절대적 감동
삶을 살며 가장 중요하게 지켜 나가고픈 신념 중 하나가 이성과 감성이 적절하게 배치된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절대적이라는 것을 잘 신뢰하지 않는 성격으로서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때때로 내가 이상하던 것보다 감성의 허용치를 을 넘어가버려 타당성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감정에 잠식되는 상황을 맞는 것을 늘 조심하려 한다.

가끔 연주자가 감정에 잘못 잠식되다 보면 연주자 혼자서만 느끼는 그 감정을 관객에게 차마 전달 하지 못하고 결국 소통의 오류가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있기도 하다. 그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연주자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느 정도까지인지 사려깊게 알아보고 파악한 후 납득 가능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음악,예술, 연주 그 무엇이 되더라도 이 분야에 절대적인 적정선 같은 것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감정을 이만큼 이해해야 하고, 얼마만큼의 지식을 알아야하고, 과학실험이나 수학공식 푸는 것 처럼 어떠한 양과 방법을 결정할 수 없는데다 그 자체가 예술의 본질을 받아 들이는 데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접하는 사람으로서도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어떠한 예술작품을 보고,듣고,읽으며 (이유를 자세히 형언 할 순 없지만) 감동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언젠가의 나 자신은 브람스나 슈만 같은 가슴 절절한 우수의 아름다움에 빠져 늪에 허우적대는 듯한 감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스스로 그 감정에 서서히 빠져드는 꽤나 “감정적인" 사람의 면모를 띄기도 했다. 어느 시기에는 완벽한 구조와 영감,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인류와 예술의 경건함이 느껴지게 하는 바흐의 작품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에서 경외심을 느끼며 한동안 바흐의 작품만 들을 때도 있다.

또 어떨 때는 클래식이 아닌 대중가요에 감명을 받아 한동안 내내 같은 노래를 수백번씩 듣기도 하는데 가요는 내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는 사뭇 다른, 특히 Text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에 신선한 자극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그야말로 시대와 장르, 언어 그 경계를 넘나든다. 보통 사람의 취향은 변한다고 말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널뛰는 나의 취향은 너무 다양해 나도 나의 “예술적 taste” 를 쉽게 종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절대적 감동이란 뭘까? 오늘도 그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음악가로서 매 순간을 영혼이 반응하는 그 어떠한 감동을 찾아나서고 사유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특별하고 선택받은 임무가 아닐까.
절대적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