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력시장의 '시스템 실패' 막아라
우리나라는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운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발전 설비계획과 송배전망 건설계획을 2년마다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도록 법제화돼 있다. 가장 최근 수립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와 너무 급박하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무리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인해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전기차,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증가와 열에너지의 전력화 같은 추가적인 전기화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 또한 RE100을 이행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신규 원전을 더 많이 건설해 원전 생태계를 부활시키고 저렴한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존재한다.

어떤 주장의 근거가 더 명확하고 논리적이든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한국전력의 재무적 위기를 포함한 전력시장의 ‘시스템 실패(system failure)’ 문제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먼저 송배전망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 남해안의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로 태양광발전소를 대규모로 건설했는데 수요지로 전기를 이송할 방법이 없다. 송배전망을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해안의 석탄발전과 신규 원전이 속속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로 송배전망이 부족해 남아도는 생산 전기를 버리거나 발전소들이 송전 제약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송배전망 독점사업자인 한전은 재무적으로 거의 식물인간 상태다. 송배전망 투자를 위해 조(兆) 단위 사업을 시행하고 적기에 건설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대안으로 민간과의 합작 투자를 통해 공동으로 송배전망을 건설하고 운영할 방안이라도 찾아야 하지만 적정한 수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재 전력요금 제도 아래에서는 이것도 쉽지 않다. 송배전망을 제때 건설하지 못하면 RE100도 CF100(carbon free 100)도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규 원전을 추가 건설하고자 한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조속히 지어야 한다. 계류 중인 관련 특별법들이 통과돼야 하고 처분장을 지을 부지와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라도 당장 건설할 수 있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에너지 안보를 챙기고 전력시장의 시스템 실패를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추가 건설하고 공급하기 위해 풍력 중심으로 새로운 설계를 진행해야 한다. 다만 선결조건으로 계통영향평가와 계획입지제도를 꼭 시행해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설치를 지양하고 주민과의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절한 규모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전력시장의 구조적 시스템 실패가 목전에 와 있다. 더 이상 한전은 송배전망을 적기에 건설할 재무적 능력이 없다. 채권을 더 발행해 해저 HVDC(초고압직류송전)를 건설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는 불확실한 기술적 투자를 감행하든 내륙 송배전망 건설 과정에서 주민과의 갈등과 마찰로 시간을 허비하든, 어떠한 경우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