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이 전 세계의 고강도 통화긴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금리 인상 사이클이 가장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했다.

25일(현지시간) BIS는 연례 경제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단기 성장에 집착할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밝혔다.

BIS는 “(각국) 금리는 대중과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질 확률은 여전히 높다는 이유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지만, 현재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는 이유는 주로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차질이 생겼던 공급망이 회복됐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았던 원자재 비용이 일부 하락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최근 물가를 지탱하는 건 탄탄한 노동 시장과 상승한 서비스 물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BI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클라우디오 보리오는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변동을 제외한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근원 인플레이션은 더 지속적”이라며 “높은 수준에서 안정화되었거나 심지어 상승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때 높은 인플레이션에 맞게 소비 수준과 행동을 조정하고, 이는 고착화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비싸진 가격에 맞춰 소비 규모를 늘리고, 한 번 커진 씀씀이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리오는 “특히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 사이의 연관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BIS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발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공공지출을 줄여야 총수요가 줄어들면서 물가상승률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금리 인상으로 차입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정확장 정책을 펼칠 경우 각국의 부채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도 있다.

BIS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다수 국가에서 인플레이션과 광범위한 금융 취약성이 공존한 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짚었다. 이어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될수록 더 강력하고 장기적인 정책적 긴축이 필요할 것이라며 은행 부문에서 추가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BIS는 “금리가 1990년대 중반 수준으로 상승하면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주요 경제국들의 전반적인 부채상환 부담이 역사상 가장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이터는 BIS 보고서를 인용해 각국 정부가 재정 긴축에 들어가지 않으면 2050년까지 선진국과 신흥국의 부채는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200%와 150%까지 뛸 것이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 부채는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