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연합뉴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연합뉴스
이호진(61) 태광그룹 전 회장이 누나 이재훈(67) 씨를 상대로 선친이 물려준 수백억원대 차명 채권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 1심에서 이겼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손승온 부장판사)는 이 전 회장이 재훈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40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상속 개시 당시 원고는 단독으로 상속받을 권리는 없었다"면서도 "피고는 제척기간(침해행위가 있는 날로부터 10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아 원고가 단독 상속인으로서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판시했다.

이 400억원은 이들 남매의 아버지인 이임용 선대 회장이 차명으로 갖고 있던 채권의 가치다.

1996년 사망한 선대 회장의 유언은 '딸들을 제외한 아내와 아들들에게만 재산을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집행자인 이기화 전 회장(이호진 전 회장의 외삼촌, 2019년 작고) 뜻에 처리하라'였다.

'나머지 재산'은 2010∼2011년 검찰의 태광그룹 수사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세무조사에서 문제의 채권 실소유자는 자신이며 타인 명의로 취득해 매도하지 않고 보관 중이라는 확인서를 썼다.

태광그룹 자금 관리인은 2010년께 이 채권을 재훈 씨에게 전달한 뒤 2012년 내용증명을 통해 이를 반환하라고 요청했으나 재훈 씨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이 전 회장은 2020년 재훈 씨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전 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언에 따라 이 채권을 단독 상속했으며 재훈 씨에게 잠시 맡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훈 씨는 유언이 무효라 채권은 자신의 것이며 채권증서 보관을 위탁받은 적도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에게 잠시 맡긴 것이 아니라면 이 채권을 아무런 대가 없이 피고에게 종국적으로 처분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피고는 채권을 반환하지 않고 채권 원리금을 상환받거나 제삼자에게 처분했으므로 반환 의무 불이행(이행불능)을 이유로 채권 원리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