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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나흘 앞두고 2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리는 “‘박자만 정확히 셀 수 있다면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가능할까?’라는 상상이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란 호기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연주자에겐 마치 물과 공기처럼 당연했던 인간 지휘자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그 중요성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봇이 지휘자로 나서는 무대는 과거 일본과 스위스 등에서 시도됐으나 국내에선 처음이다. 공연의 지휘자 에버6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인간 지휘자의 몸에 센서를 달아 움직임을 디지털화한 뒤 로봇에 입력해 따라하게 하는 식으로 지휘 동작을 구현했다.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지휘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보완을 거쳤다”며 “지휘봉을 움직이는 동작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팔 하나에 관절 일곱 개를 달았다”고 설명했다.
에버6가 지휘하는 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 비얌바수렌 샤라브 작곡의 ‘깨어난 초원’과 만다흐빌레그 비르바 작곡의 ‘말발굽 소리’ 등이다. 두 곡 모두 몽골 대초원을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곡으로 빠른 속도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의 강점에 초점을 맞춰 골랐다.
인간 지휘자와 협업하는 곡도 선보인다. 최수열 지휘자와 나란히 지휘대에 서서 ‘감’(손일훈 작곡)을 지휘할 예정이다. 최 지휘자는 “‘감’이란 곡은 악보 없이 지휘자와 연주자의 즉흥성에 크게 의존하는 곡”이라며 “에버6가 특정 악기가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나 쉬어야 하는 시간 등을 정확히 체크해주기 때문에 저는 그 안에서 즉흥적인 요소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지휘자의 역할은 무대에서 지휘봉을 흔드는 것보다 무대에 서기 전 악단과 함께 연습하고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로봇 지휘자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로봇이 앞으로 감성적인 영역에서도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며 “예술적인 영역에선 지휘자를 대신해 악단과 연습을 하는 등 방법으로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