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들어 일본 경제가 장기 저성장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일본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주가 부양책과 기업 지배구조 혁신이 맞물리며 외국인 투자 수요가 늘어나서다. 기록적인 엔저(低) 현상도 계속되며 환차익을 노린 매수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日 ETF 올 들어 20% 상승

올 들어 일본 관련 ETF는 활황세를 타고 있다. 대표적인 ETF인 아이셰어즈MCSI일본ETF(티커명 EWJ)의 수익률은 올 들어 11.8%가량 상승했다. EWJ는 도쿄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85%를 추종한다. 일본 대표 지수인 토픽스를 추종하는 셈이다.
황금기 맞은 日 증시…ETF도 덩달아 고공행진 [글로벌 ETF 트렌드]
환위험을 줄이기 위한 환 헤지 ETF의 수익률도 치솟고 있다. 재팬헤지드에쿼티ETF(티커명 DXJ)의 올해 수익률은 26.69%를 기록했다. DXJ는 도요타, 미쓰비시 등 일본 유량주를 담아낸 ETF로 미국에 상장된 일본 ETF 중 두 번째로 운용자산 규모가 크다. 상승세가 계속될 거란 기대감에 지난달 DXJ 순 유입은 3억달러를 기록했다.

엑스트랙터스 MSCI 일본 주식 ETF(DBJP) 수익률도 올해 20.2%가량 치솟았고, 비교적 저평가 된 소형주로 이뤄진 아이셰어즈 MSCI일본소형주ETF(SCJ)도 5% 상승했다.

일본 ETF가 강세인 배경엔 일본 증시의 활황이 있다. 주식 시장 전체가 상승하며 유동성이 확장하자 ETF도 덩달아 활황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2일 일본 토픽스 지수는 2311.77로 33년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증시 최고치가 한 번 더 경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 21일 토픽스 지수가 12개월 안에 2500까지 상승한다고 전망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 2200보다 약 14% 올린 것이다. 6개월 목표치는 2050에서 2400으로, 3개월 후는 2000에서 2200으로 각각 상향했다.
황금기 맞은 日 증시…ETF도 덩달아 고공행진 [글로벌 ETF 트렌드]
골드만삭스는 일본 증시가 올 여름 기간 조정을 받은 뒤 9월부터 다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으론 차익 실현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기간 조정을 받겠지만 중장기적 성장동력은 지속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보고서는 "일본 상장사들이 올 상반기 어닝 시즌에 대한 전망치 상향 조정 등 다양한 호재를 내놓을 것"이라며 “자사주 매입과 수익성 개선 방안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 활성화하며 투자 수요 증가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보이자 증시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분석이다.

일본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8로 7개월 만에 50을 넘었다. PMI는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50을 밑돌면 경기 위축을 뜻한다. 지난달 미국 제조업 PMI(48.4)를 웃돌았다.

증시 상승세를 유지하려는 정부 의지도 강하다. 지난 4월 도쿄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인 상장사는 구체적인 주가 부양책을 공시하고 실행하라”고 통보했다. 이후 미쓰비시상사와 도요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다.

금융정보업체 도카이도쿄조사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상장사들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는 3조2596억엔(약 30조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다.

이 밖에도 일본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디플레이션 완화와 일본 경기순환 주기 등을 투자 요인으로 꼽았다. 유럽과 미국과 일본 경제가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을 보이는 데다, 장기적인 디플레이션도 개선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은행(BOJ)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도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완화 정책으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환차익을 볼 수 있어서다. 엔·달러 환율은 26일 143엔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여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황금기 맞은 日 증시…ETF도 덩달아 고공행진 [글로벌 ETF 트렌드]
지타니아 칸다리 모건스탠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일본 투자에 대한 낙관론이 확산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상승세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난 1년간 세계 증시 대비 일본의 상승폭을 비교하면 과하지 않은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日 증시 과대평가 됐다

일각에서는 일본 증시가 과대 평가됐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일본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입과 수출 등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구조로 인해 세계 경기가 둔화하면 타격을 입을 위험이 커진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행보도 일본에 대한 비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ETF조사업체 베타파이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올해 들어 일본 투자에 대한 비중을 축소해왔다. 일본은행(BOJ)이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언제 뒤집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의 지난달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2% 상승하며 47년만의 최고치를 찍은 바 있다.

일본 당국의 증시 부양책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PBR이 1이하인 상장사를 대상으로 주가 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해당하는 기업 대부분이 소형주라서다.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치더라도 투자 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닉 슈미츠 버나드캐피털 애널리스트는 "일본 증시에선 특정 기업에 투자금이 쏠리는 경향이 짙다"며 "PBR 수치를 개선하더라도 글로벌 펀드 자금이 좀체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 경제가 둔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본의 출생률이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2009년부터 인구 감소 위기에 직면한 뒤 지난해까지 출생률이 계속 떨어졌다. 고령화 속도는 빨라졌다. 일본 국립인구사회보장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인구의 25%가 65세 이상 노령층으로 이뤄졌다. 이 수치는 2033년까지 3분의 1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