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토리의 비결은 ‘무엇’ 아닌 ‘왜’에 있다 [책마을]
‘참새들의 춤(Sparrows Dance)’이란 저예산 영화가 있다. 미국 뉴욕의 아파트가 배경이다. 변기 물이 줄줄 새어 화장실 바닥이 흥건한 이곳에 배관 수리 기사가 방문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별것 아닌 내용이다. 그런데 2012년 미국 오스틴 영화제에 출품돼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비결은 ‘무엇’이 아닌 ‘왜’에 있다. 영화 등장인물은 한때 배우로 조금 잘 나갔으나 광장공포증에 시달려 두문불출하는 젊은 여성 주인공과 배관공 단 두 명이다. 주인공은 오랜 시간 홀로 TV를 보며 집안에만 있다. 관계를 갈망하지만 한편으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두렵다. 영화는 단순히 배관을 고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여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바깥세상으로 조심스러운 첫발을 내딛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스토리 설계자>는 이런 게 바로 스토리라고 말한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알려준다. 저자 리사 크론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스토리 컨설턴트다. 워너브라더스를 비롯한 굵직한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각색을 도왔다. 작가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의 강사로도 일했다.

책은 “먼저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작가가 흥미진진한 플롯, 아름다운 문장, 기발한 구조 등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스토리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스토리의 핵심은 ‘내적 투쟁’이다. 주인공이 외적 플롯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내적으로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을 감당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면 작가는 주인공의 삶과 내면을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좋은 스토리와 좋은 문장은 다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3부작은 1억부 팔렸다. 독자들은 “글은 지지리도 못 썼는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반응했다. 잘 만든 스토리는 읽는 이를 몰입하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면 문장이 미문(美文)인지 아닌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에…라면?’은 스토리를 짜내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다. 아이들 그림책부터 대작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토리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도 있다. 스토리란 ‘거창하고 파란만장하고 별난 사건이 모음’이란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출판사에 투고되는 많은 원고가 이렇다. 기발한 척하지만 오히려 더 따분하다. 중간에 이야기가 막히면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식으로 끝내곤 한다.

저자는 팁을 하나 준다. ‘내가 말하려는 요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힘들 때 뭉치는 게 친구다’ 혹은 ‘남들이 뭐라 하건 나 자신을 믿자’ 같은 중심 주제를 하나 잡고 상상을 시작해 볼 수 있다.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사람도 기업도 이야기를 파는 것이 중요해진 ‘스토리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