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타가 음악의 일이라면』… 우연의 점이 모여 선이 된다
사진출처 = 문성욱 제공
클래식 음악회 무대감독이 공연 근무를 하는 하루, ‘소나타’라는 표현을 과연 몇 번이나 말하고 듣고, 듣고 말할까. 작품의 제목일 수도 있고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일 수도 있는 ‘소나타’라는 표현을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듣고 말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소나타의 정의는 늘 궁금했다. 주변에 음악을 배우고 공부하신 분들이 많지만 정작 ‘소나타’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원한 답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웬만하면 현대음악 작품에 반복은 없습니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시작하는 네 음의 동기는 교향곡 전체에 걸쳐 있는 파편과 같습니다. 사람의 얼굴로 치면 꼭 점이나 주름 같지요.”
“앞선 세대의 작곡가 중에서 존경하는 작곡가의 소나타 형식을 따라 자신의 작품을 만든 작곡가의 이야기는 들어봤습니다.”
“소나타의 정의를 배웠다기보다는 그 단어의 어원적 정의에서 출발한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논문을 준비하다 각 세기의 몇몇 음악 작품들을 선별해서 각각의 작품마다 소나타 형식이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가를 연구하던 음악학자를 본 적은 있지요.”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타악기를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지요. 어떤 때는 심지어 제1번 나뭇가지의 소리를 내기 위해 그리고 제2번 나뭇가지의 소리를 내기 위해 실제로 나뭇가지를 악기로 지시하고 있는 작품도 만났구요. 사실 두 나뭇가지의 소리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은 해보지만, 작곡가는 분명 무슨 뜻이 있었던 거겠죠.”

제시부 – 전개부 - 재현부

무대감독 일을 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관한 수많은 해설을 듣는다. 지금까지 들어온 다양한 해설 중에서 ‘소나타 형식에 대해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무엇이었나’를 곰곰이 기억해 본다. 같은 듯 다른 얼굴의 양면을 예로 들며 청소년 음악회에서 듣게 된 내용 하나가 기억에 남았다. 얼굴을 왼쪽, 오른쪽으로 나누면 눈과 귀는 왼쪽, 오른쪽으로 대칭되게 자리잡고 있고, 코와 입은 중간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얼굴의 왼쪽 부분은 제시부, 오른쪽 부분은 재현부이며 가운데 부분은 발전부라고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왼쪽 눈은 제1주제, 귀는 제2주제가 되며, 제1·제2 두 개의 주제는 오른쪽 얼굴에도 왼쪽과 대칭되게 나타나 재현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음악을 듣는 신체기관인 귀와 가까운 비유여서인지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인상적으로 남았다. 물론 이 해설자는 예외 없는 수학 공식이 없듯이 많은 훌륭한 작곡가들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하며 다양한 소나타 형식을 만들어 냈다고 하며 이 소나타의 비유를 끝냈다.

2. 형식으로서의 소나타는

고전음악을 작곡했던 수많은 작곡가가 소나타 형식에 천착하며 하나 혹은 두 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며 재현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당시의 청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하나의 자구책일 수 있다고 한 무대감독은 이야기 했다. 또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을, 연주되는 현장이 아니면 다시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청중들에게 주제를 닮은 악절들을 반복하고 발전시키고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설득하고 각인하는 일에 있어 소나타 형식이 유용했다고 했다. 이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도 선택할 수도, 요즘 말로 무한 반복의 청취 역시도 가능해진 현대에 와서는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며 재현하는 작곡의 방식은 21세기의 청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기 어렵다는 것 역시 이야기해준다. 클래식 음악을 여전히 작곡하고 있는 현재의 작곡가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어떤 음악이 혹은 어떤 형식이 다시 몇백 년이 지나도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음악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작곡가들은 오늘도 그들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다.
『소나타가 음악의 일이라면』… 우연의 점이 모여 선이 된다
사진출처 = 문성욱 제공

3. 진은숙 작곡가의 작품 – Allegro ma non troppo for percussion solo and tape

꿈많은 소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의 타악기 연주자가 무대 중앙으로 등장한다. 연주자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선물 상자가 무대 중앙에 놓여 있다. 그 커다란 상자를 감싼 테이프를 작곡가가 지시한 리듬에 따라 뜯는다. 그 안에는 구겨진 종이가 가득하다. 연주자는 종이를 꺼내어 부스럭거리며 구기고 펴고를 반복하며 무대를 걷다가 종이 뭉치 단 하나만을 들고 상자 뒤쪽 무대에 설치된 타악기들로 자리를 옮긴다. 쇠사슬을 위시한 다양한 말렛으로 여러 개의 공(Gong)을 연주하고, 생활용품 같은 빗자루, 유리병, 수저, 철제 가락 등등의 소품 역시 악기처럼 사용하며, 배경에 깔리는 전자음향, 마이크를 통해 째깍째깍 대는 시계 소리를 확성한다. 타악기들의 연주 속 어느 한순간에는 자신이 들고 온 금색의 종이를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도 있다. 이윽고 그나마 가장 익숙한 음악 같은 베이스 드럼의 연주가 이어지고 연주자는 다시 무대 앞의 그 상자로 걸어 나온다. 바닥에 흩뜨려 놓았던 종이들을 다시 상자에 담고 덮개를 닫는 시늉을 하고 그중 단 하나의 종이를 손에 든 채로 연주자는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작품의 연주가 끝났다.

연주자가 상자를 열고 타악기들의 장소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제시부였을까?
말렛들과 생활 소품들을 이용한 공(Gong)의 연주, 배경으로 등장한 전자음향, 째깍째깍 시계 소리, 그나마 익숙한 베이스 드럼의 연주는 전개부이며 발전부였을까?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종이들을 상자에 담고 그중 하나의 종이를 들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연주자의 퍼포먼스는 재현부이며 종결부였을까?
종이를 접고 펴고 구기고 찢는 소리는 결국 이 작품의 제1 주제였을까?

소나타란 단어의 어원은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음악의 건너편에 서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칸타타(Cantata)란 표현의 건너편 소나타(Sonata)란 표현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어떤 것이든 그것이 음악을 표현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소나타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원적 정의가 사실 그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진은숙 작곡가의 작품을 듣는 것에 더해, 이 어원적 정의가 앞으로 소나타가 살아갈 길인가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소나타가 음악의 일이라면』… 우연의 점이 모여 선이 된다
‘세상에 없던 예술 놀이터’에 참여하게 되며 가장 기뻤던 점 하나는 사랑하는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작가와 이 플랫폼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다와 운명을 함께하며 바다의 안녕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파도. 클래식 음악에 있어 소나타의 운명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소설의 제목을 오마주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에는 빈번히 인용하곤 하는 사랑하는 구절 역시 들어있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인상적이며 강렬한 주제 하나가 우연처럼 탄생하고 그 우연들을 연결한 작품 하나가 탄생하며 그 작품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작곡가와 청중들에게 삼백 년의 사랑을 선사해온, 그것이 음악을 위해 일해온 소나타의 지금까지의 인생이었다면 큰 비약일까?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클래식 작곡가들은 앞선 작곡가들의 형식에서 무엇을 배우며 또 다른 무엇을 탄생시키려 노력할까? 그리고 혹시 그 작품들을 여전히 앞으로도 소나타라 명명할까? 오늘의 우연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으로부터 다시 삼백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이름을 잃지 않고 또 하나의 멋진 선을 이어낸 소나타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를 마음을 다해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