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때 미국 건너간 입양아, 한국인의 '恨'을 AR에 담다
요즘 미국 뉴욕에서 가장 ‘핫’한 전시 중 하나는 록펠러센터에서 열리는 ‘기원, 출현, 귀환(Origin, Emergence, Return)’이다. 아트페어와 경매 등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다.

박서보, 이배 등 익숙한 이름 사이로 외국인 이름이 하나 끼어 있다. 진 마이어슨(51·사진)이다. 인천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미네소타주 가정에 입양된 한국계 미국 작가다. 뉴욕, 파리, 홍콩 등 세계 16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몇 년 전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서울에 정착했다.

궁금했다. 미국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은데 한국 미술을 알리는 전시에 굳이 참여한 이유가 뭘까. 최근 서울 문래동 작업실에서 만난 마이어슨에게 물었더니 명쾌한 답을 들려줬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오래 산 이우환도, 프랑스에서 30년 살았던 이배도 다 ‘한국 작가’잖아요. 중요한 건 ‘한국에 얼마나 있었느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 담긴 것이 중요하죠. 저는 그게 ‘한(恨)’이라고 생각해요.”

마이어슨은 그래서 자신도 ‘한국 예술가’라고 했다. 입양아로서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나는 누구인가’란 고민과 한을 그림에 담아서다. “애초 그림을 시작한 것도 한국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미국에 입양되기 전 고아원에서 항상 그림을 그리곤 했거든요. 그림은 제가 한국을 기억하는 방법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쭉 그림을 그렸다지만, 예술가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가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시안 예술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구나 회화는 ‘한물간 장르’로 여겨졌다.

살아남으려면 뭔가 달라야 했다. 마이어슨은 포토샵에서 답을 찾았다. 잡지에 나온 이미지나 사진을 포토샵으로 왜곡한 뒤 캔버스에 그렸다.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는 단숨에 세계 미술계를 사로잡았다. 2004년 런던 프리즈에선 영국 사치갤러리 설립자인 찰스 사치가 그의 작품을 싹쓸이했다. 같은 해 열린 첫 개인전에선 록펠러센터를 소유한 글로벌 부동산운용사 티시만스파이어의 공동 창립자 제리 스파이어가 그의 5m 길이 대작을 구매했다.

마이어슨은 이번 전시에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림을 휴대폰으로 찍으면 그 안에 숨겨진 QR코드를 통해 붓의 레이어와 스케치를 증강현실(AR)로 볼 수 있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겹 한 겹 올린 물감층이 3차원(3D) 공간에서 되살아난다. 그는 이걸 두고 “AR이 그림에 부여한 ‘출생 기록(birth record)’”이라고 했다.

“저는 출생 기록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제 그림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입양아로서의 오랜 고민이 저를 AR로 이끈 셈이네요.” 뉴욕 전시는 7월 26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