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 행사에서 바그너그룹의 반란에 맞선 군인들을 치하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대해선 예산 횡령 등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사실상 반역에 대한 응징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7일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 내 광장에서 약 2500명의 보안군, 국가근위대 등 군인을 모아놓고 “여러분이 헌법 질서와 시민의 생명, 안전과 자유를 지켰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 사태가 일단락된 뒤 TV 연설과 정부 관계자 회의, 외교 행보 등으로 내부의 동요를 수습한 데 이어 이날 첫 외부 공개 행사에 나타났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TV 연설에서 “무장 반란은 어떤 경우든 진압됐을 것”이라며 “처음부터 (군에) 유혈 사태를 피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반란군이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군한 것은 자신이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 광장에서 “앞으로 군 리더십의 중추는 전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 이들로 구성돼야 한다”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에 대해선 “반란이 성공했다면 외국 세력이 이를 이용했을 것”이라며 비난을 계속했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을 겨냥해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바그너그룹에 인건비로 860억루블(약 1조3150억원) 이상을 줬음에도 콩코드 기업 소유주(프리고진)는 군에 음식을 공급해 연간 800억루블(약 1조2230억원)을 벌었다”며 “당국이 바그너그룹과 수장에게 지급된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협상을 통해 프리고진의 반역 혐의 기소를 취하하겠다고 한 지 이틀 만에 말을 바꾼 셈이다.

이날 프리고진이 소유한 비즈니스 여객기는 러시아 로스토프주를 떠나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인근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관영 통신을 통해 프리고진이 자국 내에 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전날 텔레그램을 통해 무장반란 중단 이후 첫 공개 메시지로 “‘정의의 행진’ 목적은 바그너그룹의 파괴를 피하는 것이며 러시아 정부 전복을 위해 행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러시아군은 바그너그룹으로부터 전차 등 기갑 장비를 인수받는 등 무장해제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바그너 용병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고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집에 가도 된다”며 “아니면 벨라루스로 가라”고 했다.

한편 러시아가 주춤하는 사이 우크라이나는 드니프로강을 넘어 남부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주 헤르손시에서 강을 건너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마을을 되찾았고, 러시아 침공 직후 점령당한 도네츠크주 리우노필 지역도 탈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