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의대 정원 확대 더 늦출 수 없다
“보건복지부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

정부가 지난 27일 의대 정원 관련 논의를 의료계뿐 아니라 환자단체 등 의료 수요자, 전문가와도 함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뒤 대한의사협회가 내놓은 성명이다. 협상 카운터파트였던 자신들의 지위를 정부가 부정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의사협회는 향후 정부와 진행할 각종 분야의 모든 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정부와 의사협회는 지난 1월부터 의정협의체를 가동해 의대 정원 확대를 포함한 의료계 현안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의사협회 내부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회장단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 자체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수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응급실 뺑뺑이 없앨 출발점

10만 명이 넘는 의사협회 회원 대다수는 동네 개원의다. 의대 정원 확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의사 대표단체인 의사협회가 손사래를 친 배경이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개원의로서는 미래 경쟁자가 더 많아진다. 의사협회에 의대 정원 확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인 셈이다.

의대 신입생 정원이 3058명으로 동결된 것은 2006년부터다. 2000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정부가 의료계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다. 하지만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의료진 부족 문제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일상화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한국의 의사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이다. 멕시코(2.4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평균(3.7명)에는 1.2명 모자란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의지는 확고하다. 수요자 참여 위원회라는 공론장을 통해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환자단체 등 찬성표를 던질 우군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는 명분까지 챙기게 됐다.

의사과학자 양성도 고려돼야

이제 관심사는 ‘정원 확대 폭’이다. 복지부 주최로 27일 열린 포럼에선 의사 수가 갈수록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현행대로라면 2050년 2만2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2023년까지 의대 정원을 5%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025년 5516명, 2030년 1만4334명, 2035년 2만7232명의 의사가 필요할 것이라는 더 부정적인 전망도 제기됐다.

아쉬운 대목은 이런 추계치가 진료를 보는 임상의사에 국한됐다는 것이다. 필수의료, 지역 간 의료 불평등 등 의료 현장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바이오산업 발전에 공헌할 의사과학자 양성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의사과학자 육성 방안도 좀 더 촘촘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고령화하면서 의료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의료진 부족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엔 의대 정원 확대 물꼬를 반드시 터야 한다. 정부가 어설프게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꺼냈다가 전공의 파업에 밀려 철회하고 만 2020년의 실책을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