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문화역서울284에서 '토마스 헤더윅: 감성을 빚다'
'씨앗의 성전' '베슬' 등 포함해 30점의 건축 모형과 영상
자동차에서 공공 건물, 가구까지 '경계 없는 디자이너'
"생명력 잃은 전 세계 건물을 '인간답게' 만드는 게 목표"
한국은 세계적인 창조도시..."문화의 '르네상스'가 왔다"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226.1.jpg)
토마스 헤더윅(53)이 지난 30년 간 해온 작품들이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업적은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어렵다.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건 보통 50대 이후라지만 헤더윅과 그의 스튜디오는 약 30년 간 세계 주요 도시에 '랜드마크'를 심고 다닌다. 이제 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영국의 국민 디자이너이자 '콘란샵'을 만든 거장 테렌스 콘란은 그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했다.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225.1.jpg)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224.1.jpg)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축물을 끊임없이 지은 헤더윅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가 아닌 '디자이너'라고 규정했다.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200.1.jpg)
"예술, 건축, 디자인 등 이런 구분은 다양성과 상상력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한 장르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면 '자기복제'를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스스로를 전문가나 특정 직업인으로 가두지 않고, 세상에서 벌이지는 수많은 일과 장면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저에겐 관점을 전환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건축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요."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194.1.png)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건축은 너무 '비인간적'인 모습이 되었어요. 도시마다 비슷비슷한 건물을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지어댔고, 이제 생명력을 다 한 것들이 넘쳐납니다. 영국의 상업용 건물의 수명은 40년, 한국은 평균 30년이라고 하죠. 하지만 건축은 사람의 생각을 디자인합니다. 우리의 감성이 담겨 1000년 넘게 곁에 머물 건물을 짓는 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것인 동시에 사람들의 감수성과 창의성을 북돋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6155.1.jpg)
200여 명의 팀원과 함께 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는 일반 건축 스튜디오와 조금 다르게 작업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그 첫번째다.
"설계를 시작할 때 항상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죠. 올림픽 성화대를 만들 땐 '원형 경기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리는 곳은 중앙의 바닥인데 왜 하늘 높은 곳에 들어올려야 하나' 생각했죠. 학교는 선생과 학생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곳인데 왜 딱딱한 구획으로 나뉘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르는 곳이어야 할까. 왜 강물 위 다리는 가만히 고정된 채 있어야 할까, 사람이 지날 때만 펼쳐지면 안되는 걸까 하고요."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206.1.jpg)
그는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꿨다. 잡동사니 가득한 어머니의 구슬 가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가 공예 장인들과 함께 자란 영향이다. 하지만 대학엔 '발명'이라는 전공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에서 3D 디자인을 전공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원에선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 디자인, 제작, 건축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모아 '헤더윅 스튜디오'를 차렸고, 소규모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하다 2001년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집단 토론과 질문과 분석, 반복을 통해 '예술가들의 예술'이 아닌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예술'을 고민했다.
"모든 사람은 특별해지고 싶어합니다. 80억 명의 인구 중에 추하고 못생기길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아름다운 럭셔리를 꿈꾸죠. 건물도 그러해야 합니다. 각각은 특별해야 하고, 그 안에 맥락과 이야기와 감성이 담겨야 하고, 그래서 하나 하나가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는 건물이 되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192.1.jpg)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6208.1.jpg)
10년 전부터 한국을 오간 그는 "세계가 한국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통해 알려진 서울이 이제 '누구나 가장 먼저 가고 싶은 장소'가 됐다"며 "공예와 건축 등 수준 높은 한국의 문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6/01.33835229.1.jpg)
"헤더윅 스튜디오가 큰 프로젝트를 많이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늘 자본과 행정의 제약을 극복해 왔지요. 어떤 벽에 부딪칠 때마다 우린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가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조금 더 스파크를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김보라 기자 / 사진=이솔 기자· 헤더윅스튜디오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