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보험 활성화' 국정과제인데 가입률 0.8%…"진료부 발급부터"
정부가 ‘펫보험 활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보험사들은 시장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펫보험 가입률은 지난해 말 기준 0.8%로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험업계와 소비자들은 “사람이 병원에 갈 때처럼 동물병원으로부터 항상 진료기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국회 논의는 엉켜있는 상황이다.

사람처럼 병원서 진료부 못받아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펫보험을 내놓은 보험사들은 동물병원의 진료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개정안 처리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료부는 병원의 진료내용을 표시하는 기록이다. 어떤 검사를 했고 어떤 처방약을 썼는지, 어떻게 수술이 이뤄졌는지 등의 내용이 시간대 별로 기록돼 있다.

현행 수의사법은 수의사에게 진료부 작성 의무를 부과하지만, 의료법과 달리 반려동물 보호자가 진료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교부하는 의무는 인정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항상 진료부를 발급받을 수 있는 사람과는 달리 반려동물 보호자는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까지 국회에는 진료부 열람과 사본 발급을 의무화하는 여러 법안(이성만 홍성국 정청래 안병길)이 발의됐지만 뚜렷한 논의 진전은 없었다. 진료부에는 어떤 진료를 했는지 자세히 기록된 탓에 수의사계가 발급 의무화를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약물 오남용 우려가 있다는 점도 반대 근거로 내세운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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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가 멈춰있는 동안 펫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모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가입자 입장에선 보험사가 “보험금 심사에 필요하다”며 진료부를 요구하는데 동물병원이 발급을 거부하면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된다.

펫보험을 내놓은 보험사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진료부 발급이 쉽지 않아 일부 보험사는 금액만 적힌 영수증으로만 보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영수증만 있으면 보험 가입 전부터 앓았던 질병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손해율 관리가 어려워 누수 보험금이 상당하다”고 했다.

가입 상품에서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 스케일링을 잇몸수술로 기재해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보장범위를 확대한 신규 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의료사고 때만 진료부 발급?

이런 가운데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이달 초 진료부 발급 의무화 조항을 추가한 수의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수의사계와 논의를 거쳐 나온 법안인 만큼 통과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 및 수의사계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진료부 발급에 조건이 부여된 탓에 보험업계는 오히려 이 법안이 통과될까봐 떨고 있는 상황이다.

이 법안은 의무적으로 진료부를 발급해야 하는 조건을 ‘한국소비자원에 동물의료사고 여부 확인 등을 위해 제출하기 위한 목적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목적’으로 제한했다. 반대 움직임이 있는 만큼 일단 통과를 위해선 조건을 명확히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진료부 발급 목적이 의료사고가 아닌 보험금 지급이라면 동물병원이 주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의무 법안이 없는 현 상황보다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려동물 의료 분쟁 대응에는 유리해지지만 보험 관점에선 나아지는 게 없다는 시각이다. 허은아 의원실은 일단 통과시킨 뒤 시행령 등을 통해 보험증빙 목적의 발급을 의무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 조항으로 제한을 뒀다면 시행령으로 보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발의된 법안들은 반려동물 소유자가 육안으로 진료부를 열람하는 것은 조건 없이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직접 보는 것만 허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