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간 철강·알루미늄 관세 방안을 둘러싼 분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양측이 관세 부과 방식에 각자의 기준을 적용할 것을 내세우면서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0월까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 촉발된 미·EU 간 무역 분쟁이 되살아날 전망이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최근 "미국의 관세 해법이 EU 역내 철강 생산업체들을 차별하는 등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위반 소지가 있다"며 미국측 제안을 거절했다. 양측이 10월 안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가운데,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내주 미 워싱턴DC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8년 3월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적용해 미국에 수입되는 유럽연합산 철강 등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EU는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와 리바이스 청바지, 켄터키 버번, 담배, 옥수수, 오렌지 주스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 부과로 맞섰다.

조 바이든 미 정부가 들어선 뒤 2021년 양측은 미국이 유럽산 철강 330만t에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무역 분쟁을 일단락했다. 무역확장법 제232조 적용은 계속하되, 제한된 물량의 유럽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무관세 수출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하는 합의를 통해서다. EU의 대미 철강 수출 규모는 연평균 500만t 가량이다.

동시에 미국과 EU는 지속 가능한 철강·알루미늄에 관한 글로벌 협정을 맺고 영국, 일본 등과 함께 '친환경 철강 클럽'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보호무역주의에 의한 관세 분쟁이 아닌 저탄소·친환경 철강 생산을 명분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우회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협정 회원국들 간에 설정한 탄소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철강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또 클럽에 가입하려는 회원국들은 철강·알루미늄을 과잉 생산하지 않고 국영기업의 철강 생산 역할을 제한하는 방안 등에 합의해야 했다.

하지만 EU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친환경 철강 클럽'에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CBAM은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의 탄소배출량 추정치를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세금을 부과하는 일종의 '무역 장벽'이다. 또 제품 원산지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더 낮거나 관련 체계가 없는 경우 유럽 수입업체가 ETS와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미국에는 국가 차원의 탄소 가격 책정 시스템이 없는 데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는 중공업이 주축인 펜실베이니아주, 미시간주 등에서 새로운 부과금을 매기는 것을 꺼리고 있다. FT는 "양측이 제한된 철강 물량에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잠시 휴전한 상태이긴 하지만, 10월까지 '친환경 철강 클럽'에 관한 구속력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무역 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