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얼마 전 충남 천안의 한 치킨집에서 손님 10명이 단체로 음식값 26만원어치를 지불하지 않고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일 매장 폐쇄회로(CC)TV에는 점주가 배달 전화를 받는 사이 이들 무리가 도주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가게 사장은 계산하지 않고 잠적한 일행을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례2. 서울 중랑구의 한 식당에서는 음식을 먹고 자동차 키와 고장 난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 주인을 안심시킨 뒤, 4만4000원가량을 지불하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달아난 남성의 사례도 공개됐다. 이 업주의 자녀는 중랑경찰서에 신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고객이 키오스크에서 카드를 결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식당에서 고객이 키오스크에서 카드를 결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들어 잇따라 발생하는 '먹튀 사건'에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선결제가 답이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음식을 주문할 때 결제를 미리 받아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테이블 오더'와 '키오스크'를 도입을 고려하는 업주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설치 비용이 상당하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무전취식, 말 그대로 돈 없이 음식을 먹는 행위다. 경찰청이 최근 5년간 식당 등에서 발생하는 무전취식 등 신고 건수를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발생했던 2020년 10만5547건, 2021년 6만5217건으로 전년대비 다소 줄었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난해엔 9만4752건으로 45.3% 급증했다. 올해 4월까지 집계된 접수만 3만8150건이었다. 경찰청은 코로나19 동안 잠잠했던 무전취식이 엔데믹으로 야외활동이 증가하면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늘어나는 무전취식을 피한 곳은 키오스크가 설치된 곳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무전취식이 발생한 식당은 대부분 식당 내 선 주문을 받지 않거나 키오스크 등으로 선불 결제를 하지 않은 경우였다.
한 중국집에 내붙은 '먹튀 경고문'. /사진='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 캡처
한 중국집에 내붙은 '먹튀 경고문'. /사진='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 캡처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운영 대수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2022년 45만4741대로 3년 새 2.4배 증가했다. 특히 이 기간 식당 등 외식업 내 키오스크 도입은 같은 기간 5479대에서 8만7341대로 약 17배 늘어났다.

최근에는 규모가 큰 패스트푸드나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뿐 아니라 골목의 작은 식당에서도 키오스크가 설치된 곳이 여럿이다. 이들 업주들은 단순히 계산을 담당하는 인건비보다 무전취식을 줄이는 데 키오스크가 더 효과적이라고 전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다수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이젠 어디든 무조건 키오스크 선불시스템 도입해야 한다", "요새 키오스크가 선불이어서 먹튀를 막기에 좋다", "키오스크 필수인 시대가 됐다. 결제 후에만 음식 제공해야 한다" 등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테이블 오더와 키오스크를 광고하는 업체들도 '먹튀 예방'을 홍보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한 키오스크 업체는 "먹튀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자영업자분이 '선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계신다"라며 "손님이 먼저 결제해야지만 주문이 접수되고 상품이 나오기 때문에 사장님은 먹튀 걱정을 없앨 수 있다"고 제품을 홍보했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테이블오더로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 /사진=뉴스1
서울의 한 식당에서 테이블오더로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 /사진=뉴스1
하지만 키오스크나 테이블 오더를 도입하는 것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다. 테이블 오더 기기 가격은 한대당 평균 40~50만원 정도다. 매장 내 테이블이 20개라고 계산했을 때, 설치 비용만 800~1000만원에 달한다. 키오스크는 평균적으로 한대당 가격이 200만~500만원으로 형성돼있으나, 규모가 있는 식당 등에서 사용할만한 대형 기기의 경우 각종 옵션이 붙으면 1000만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 이런 탓에 업주들 사이에서는 "인건비가 올라 혼자 영업하는데 '먹튀족' 잡겠다고 기기를 설치하는 건 돈이 아깝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키오스크 등 무인 선결제 시스템 도입 시, 정보통신(IT) 사용이 어려운 중장년, 고령층이나 시각장애인 등은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롯데 멤버스가 지난 3월 전국 10대 이상 남녀 13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키오스크 이용 경험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6.3%는 키오스크 주문진행 중 포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오스크 이용 불편 사항(중복응답)으로 '메뉴 조작이 어려움'이 28.6%를 차지했으며, 40대 이상에서는 키오스크 주문보다 직원 주문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식당 직원은 "우리 식당엔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데, 손님들이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거나 불편해하실 걸 알기 때문에 쉽게 들여오기 어렵다"며 "차라리 선불로 일일이 주문받는 게 나은 거 같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식당 사장도 "늦은 저녁이나 밤 시간대에 자주 찾으시는 중장년층분들은 분명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시고 귀찮아하실 거기 때문에 도입할 생각도 못 한다"며 "차라리 선불로 받는 게 낫다. 괜히 어렵게 주문받았다가 손님들 다 끊겨 나갈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점심시간대 사람이 붐비는 한 식당 앞에 설치된 키오스크. /사진=김세린 기자
점심시간대 사람이 붐비는 한 식당 앞에 설치된 키오스크. /사진=김세린 기자
무전취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범죄 발생률을 높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무전취식은 상습범이 아닌 경우 대부분 즉결심판(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넘겨진다. 즉결심판이란 경미한 범죄 사건에 대해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에 따라 경찰서장의 청구로 순회판사가 행하는 약식재판을 말한다.

신홍명 법률사무소 화온 변호사는 "무전취식은 경범죄처벌법 내지 사기죄에 해당하게 되는데, 법원 내부의 형벌기준표 및 양형참작사유 등에 의해 피해액이나 범죄태양 등에 의해 이미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다"며 "무전취식 대부분이 피해액이 100만 원 이하로 비교적 소액이기 때문에 처벌 강도가 낮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별도 법령 제정 내지 개정을 통해 강화된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업주로서는 선불로 대금을 지급받는 등으로 자체적인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상습범은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지만, 일회성에 그치거나 금액이 소액인 부분은 형사입건하는 건 어렵다"면서도 "일부 시민들이 무전취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강력한 범죄이며 사기죄가 성립돼 형사 입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전취식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고 접수된 건에 대한 강력한 조사 및 서류 추적을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