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30대에 차관 된 역도 여왕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의 말이다. “쏜 화살은 신경 쓰지 않고 남아 있는 화살에만 신경 쓴다”고 한 것을 언론에서 멋있게 포장했다는 말도 있지만, 그게 대수인가. 열일곱 살 소녀는 이미 진리의 한 자락을 깨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쏜 화살에 대한 생각과 미련, 집착이 다음 화살의 명중을 방해한다는 것을. 극한의 훈련, 자기와의 싸움을 수없이 겪은 덕분일까. 김수녕처럼 명언을 남긴 스포츠 선수가 많다. 야구선수 이승엽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고, 수영의 박태환은 “한 번은 실수다. 그러나 두 번은 실패다”라고 했다.

세계선수권을 4연패하고, 올림픽 금·은·동 메달을 모두 따낸 역도의 장미란(39·용인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도라는 종목의 특성, 최중량급 선수의 육중한 이미지와 달리 막힘 없는 언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말솜씨만 좋은 게 아니라 생각이 깊어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올해 초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는 “인생과 역도는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쉽진 않지만 해볼 만하다”고 했다. 운동선수에게는 성공과 실패가 숙명처럼 따라다니지만 여기에 동요하지 않는 그만의 비법도 있다. 실패하면 ‘아직 나한테 성공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성공하면 ‘한 번에 이렇게 잘될 리가 없어’라며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것이다.

장미란은 공부하는 운동선수로도 유명했다. 고려대 학사(체육교육학), 성신여대 석사·용인대 박사(체육학)에 이어 2017년부터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에서 공부해 스포츠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용인대 교수로 복직해 후배들을 가르치던 그가 29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임명됐다. 국가대표 출신 차관은 사격의 박종길, 수영의 최윤희에 이어 세 번째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는 처음이다.

체육계는 “현역 시절부터 기량도 성품도 최고였다”(최성용 대한역도연맹 회장)며 환영의 뜻과 함께 스포츠 발전에 큰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오랜 선수 경험, 체육교육 및 행정에 대한 전문지식 등을 두루 갖춘 젊은 차관이 한국 체육계에 가져올 변화의 바람이 기대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