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사랑한 ‘순이’는 누굴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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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전당
순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 윤동주(1917~1945) : 시인.
------------------------ 윤동주 시에 ‘순이’가 등장하는 건 3편이나 됩니다. 연희전문(지금의 연세대) 1학년 여름에 쓴 ‘사랑의 전당’(1938)과 2학년 9월에 쓴 ‘소년’(1939), 4학년 3월에 쓴 ‘눈 오는 지도(地圖)’(1941)에 ‘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소년’의 마지막에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는 구절이 있지요. ‘눈 오는 지도’는 처음부터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로 시작합니다.
윤동주가 ‘소년’에서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고 했던 ‘순이’.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눈 오는 지도’)던 ‘순이’…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요?
연희전문 시절 절친한 후배였던 정병욱의 회고에 따르면, 윤동주가 졸업반 때 신촌에서 북아현동으로 하숙을 옮겼는데 그 동네에 윤동주 아버지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딸은 이화여전(지금의 이화여대) 문과 졸업반이었죠. 둘은 교회와 성경반을 같이 다니며 가까워졌고 매일 같은 기차로 통학했다고 합니다.
정병욱은 “그녀에 대한 감정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지요. 영화 ‘동주’에도 문학 공부를 같이하는 여학생이 나오긴 합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졸업반이라면 1941년이니, 그 전 시에 나오는 순이는 누군지 알 길이 없지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은 “오빠는 여자 친구도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며 “다만 일본 유학 중에 만난 박춘혜라는 여학생 사진을 가져와서 할아버지께 보여드린 적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윤혜원의 남편(오형범)도 비슷한 얘기를 했죠.
“윤동주 사후인 해방 후에 목사 딸인 박춘혜를 만난 적이 있어요. 옌볜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청진에서 잠시 살았는데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는 박춘혜를 봤지요. 나중에 알아보니 윤동주가 마음속으로만 좋아했을 뿐 프러포즈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부끄러움 많은 ‘숙맥’ 동주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 건 뻔하지만, 그래도 그가 마음에 둔 사랑의 대상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동주가 순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명동학교 졸업식이라고 합니다. 그때 선물 받은 김동환 시집 <국경의 밤>에 순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니라면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마광수 교수의 말처럼 “순이라는 심상을 통해 모든 우리 민족의 여성, 또는 그가 마음속에 그린 이상적인 ‘님’을 상징하려 했던” 것일까요.
동주는 ‘바람이 불어’라는 시에서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고 썼는데, 이 또한 역설적인 반어법의 표현이 아닐까요. 대체 동주가 이렇게까지 꼭꼭 숨겨둔 마음속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순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 윤동주(1917~1945) : 시인.
------------------------ 윤동주 시에 ‘순이’가 등장하는 건 3편이나 됩니다. 연희전문(지금의 연세대) 1학년 여름에 쓴 ‘사랑의 전당’(1938)과 2학년 9월에 쓴 ‘소년’(1939), 4학년 3월에 쓴 ‘눈 오는 지도(地圖)’(1941)에 ‘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소년’의 마지막에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는 구절이 있지요. ‘눈 오는 지도’는 처음부터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로 시작합니다.
윤동주가 ‘소년’에서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고 했던 ‘순이’.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눈 오는 지도’)던 ‘순이’…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요?
연희전문 시절 절친한 후배였던 정병욱의 회고에 따르면, 윤동주가 졸업반 때 신촌에서 북아현동으로 하숙을 옮겼는데 그 동네에 윤동주 아버지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딸은 이화여전(지금의 이화여대) 문과 졸업반이었죠. 둘은 교회와 성경반을 같이 다니며 가까워졌고 매일 같은 기차로 통학했다고 합니다.
정병욱은 “그녀에 대한 감정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지요. 영화 ‘동주’에도 문학 공부를 같이하는 여학생이 나오긴 합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졸업반이라면 1941년이니, 그 전 시에 나오는 순이는 누군지 알 길이 없지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은 “오빠는 여자 친구도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며 “다만 일본 유학 중에 만난 박춘혜라는 여학생 사진을 가져와서 할아버지께 보여드린 적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윤혜원의 남편(오형범)도 비슷한 얘기를 했죠.
“윤동주 사후인 해방 후에 목사 딸인 박춘혜를 만난 적이 있어요. 옌볜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청진에서 잠시 살았는데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는 박춘혜를 봤지요. 나중에 알아보니 윤동주가 마음속으로만 좋아했을 뿐 프러포즈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부끄러움 많은 ‘숙맥’ 동주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 건 뻔하지만, 그래도 그가 마음에 둔 사랑의 대상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동주가 순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명동학교 졸업식이라고 합니다. 그때 선물 받은 김동환 시집 <국경의 밤>에 순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니라면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마광수 교수의 말처럼 “순이라는 심상을 통해 모든 우리 민족의 여성, 또는 그가 마음속에 그린 이상적인 ‘님’을 상징하려 했던” 것일까요.
동주는 ‘바람이 불어’라는 시에서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고 썼는데, 이 또한 역설적인 반어법의 표현이 아닐까요. 대체 동주가 이렇게까지 꼭꼭 숨겨둔 마음속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