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기 대표 "성장산업에 돈이 흘러가야 좋은 세상 올 것"
벤처캐피털(VC)에서 투자를 받는 게 스타트업 성장에 정말 도움이 될까? ‘VC 투자=스타트업 성장’으로 통하는 벤처투자 공식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 자산운용사 대표로 활동하다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안 금융 모델을 만드는 스타트업 고위드를 설립한 김항기 대표(사진)다.

김 대표는 지난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극초기 스타트업은 액셀러레이터와 VC가 키우는 역할을 해주는 게 맞다”라면서도 “기업이 공헌이익을 내는 단계부터는 ‘대출’ 모델이 있어야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으로 자본 조달만 계속하다 보면 성장 과욕을 부리거나 창업자 지분율이 과도하게 희석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담보와 신용이 없는 스타트업에 은행 대출의 장벽은 높다. 그가 2020년 4월 고위드를 창업하고 공헌이익을 기반으로 은행이 혁신기업에 대출해주도록 실시간으로 현금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기업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고 있는 이유다. 공헌이익은 매출액에서 변동비를 뺀 것으로, 고정비를 회수하고 얼마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쿠팡은 2015년부터 공헌이익을 냈지만 개발자 인력과 물류센터를 확대하면서 적자가 이어졌고 지난해 3분기에야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시작은 ‘45일 단기대출’ 모델인 신용카드였다. 고위드는 카드 발급도 어려웠던 스타트업을 위해 전용 법인카드를 출시해 3년 만에 고객사 7000개를 돌파했다. 하반기에는 1년여의 준비 끝에 매출채권 할인 서비스 ‘미래매출 미리지급’을 선보인다. 과거 반복적으로 발생한 매출을 기반으로 향후 발생 예정인 매출을 할인해 즉시 현금으로 지급받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캡체이스, 파이프 등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매출 기반 대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건국대 무역학과 93학번인 김 대표는 졸업과 동시에 외환위기를 맞은 ‘IMF 세대’다. 취업 문이 막히자 주식 트레이딩 교육회사를 창업해 2년 만에 엑시트에 성공했다. 서른 살에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10년 동안 여의도 금융권에서 일한 그는 39세에 알펜루트자산운용을 창업했다. 상당한 부를 이뤘지만 ‘라임사태’ 여파로 펀드 환매정지를 맞으면서 20년 투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겪기도 했다. 50대를 앞두고 다시 스타트업을 위한 대안금융 플랫폼에 뛰어든 것이다.

업력이 짧은 핀테크 스타트업이 수십 년의 네트워크가 축적된 은행의 영역인 대출을 파고드는 것은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세상이 좋게 변화하려면 성장하는 산업에 금융의 돈이 흘러가야 한다”며 “기존 은행이 못 한다면 어디든 혁신의 단초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허란 기자/사진=이솔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