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소리에 영감 받아 5주 만에 쓴 곡…"재즈를 고전의 반열에 올렸다" [오현우의 듣는 사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화성악도 배운 적 없었지만
'재즈의 왕' 폴 화이트먼이
곡 써달란 말에 덜컥 수락
초연 앞두고 곡 완성 못해
신문기사로 독촉 당하기도
화성악도 배운 적 없었지만
'재즈의 왕' 폴 화이트먼이
곡 써달란 말에 덜컥 수락
초연 앞두고 곡 완성 못해
신문기사로 독촉 당하기도
클라리넷이 고음을 길게 뽑아내며 글리산도(여러 음정을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기법)를 들려준다. 이어 피아니스트가 홀로 화려한 카덴차(무반주 즉흥 연주)를 선보인다. 클라리넷이 들려준 테마를 변주하며 광기 어린 독주를 이어간다. 이윽고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강렬하게 뿜어낸다. 1924년 2월 12일 미국 뉴욕 아이올리온 홀에서 열린 조지 거슈윈(1989~1937)의 ‘랩소디 인 블루’ 초연 현장이다.
‘재즈의 왕’이라고 불렸던 폴 화이트먼이 개최한 이날 공연은 ‘현대음악의 실험’이 주제였다. 당대 클래식 음악가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시류를 선보이기 위한 자리.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날고 기는 작곡가들이 공연에 참석했다. 총 26곡의 연주 리스트가 있었는데, 거슈인의 곡은 25번째 순서였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객석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이유는 많았다. 앞서 연주된 곡들이 모두 낯선 작품이었고, 하필 공연장 환기시설이 고장나 난방기구의 열기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유명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돼도 고개를 떨군 채 꾸벅꾸벅 조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관객의 집중력이 이미 바닥난 상태에서 ‘랩소디 인 블루’의 첫 마디가 울려 퍼졌고, 객석은 순간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음악회가 끝난 뒤 26세의 거슈윈은 미국의 스타 작곡가로 떠올랐다. 이 곡은 미국에서 3년간 84회 재연됐고, 음반은 100만 장 넘게 팔렸다. 하늘 높이 치솟는 클라리넷과 자유분방한 분위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뒤섞인 곡에 미국인들이 반한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불리는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곡에 대해 “곡 구조가 허술해 보여도 거슈윈은 차이콥스키 이래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썼다. 신이 그에게 영감을 전해 준 것 같다”고 호평했다. 사실 거슈인은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이 공연 전까지 관현악곡을 써본 적이 없고, 화성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다. 출판사에 취직한 뒤 악보를 팔기 위해 피아노를 친 게 전부. 주선율을 피아노로 치면 관현악 화음은 편곡자가 대신 써줄 정도였다. 1막 길이의 오페레타 등 대중음악만 쓰던 작곡가로, 클래식이나 재즈와는 거리가 먼 그를 알아본 건 화이트먼. 그에게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르는 관현악곡을 써달라고 요구했고, 거슈인은 별생각 없이 승낙했다. 하지만 그동안 관현악곡과 화성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던 거슈인은 어쩔 줄 몰라 시간만 흘려보냈다.
거슈윈은 초연을 두 달 앞두고도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화가 난 화이트먼은 신문 기사를 통해 재촉했다. 친구들과 당구를 치던 거슈윈은 ‘뉴욕 트리뷴’에 실린 “조지 거슈윈이 재즈 협주곡을 쓰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놀란 거슈윈은 곧장 보스턴행 열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들리는 마찰음과 덜컹거리는 소리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5주 만에 ‘랩소디 인 블루’를 완성했다.
거슈윈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일화지만 그는 늘 성장에 목말라했다.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 콤플렉스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랩소디 인 블루’를 초연한 뒤 모리스 라벨을 만나 스승이 돼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라벨은 거슈인에게 “당신은 이미 일류 거슈윈인데, 왜 이류 라벨이 되려 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최고의 음악 교육자였던 나디아 블랑제에게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클래식을 공부하면 되레 거슈윈만이 선보일 수 있는 재즈 선율이 망가질 것이란 게 이유였다. 거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거슈윈은 승승장구했다. 재즈를 기반으로 클래식의 다양한 장르를 엮어가며 명곡을 쏟아냈다. ‘피아노 협주곡 F장조’, 오페라 ‘포기와 배스’ ‘파리의 미국인’ ‘서머타임’ 등 걸작을 쏟아냈다.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던 그는 악성 뇌종양으로 쓰러졌고 수술을 받던 중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거슈윈이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흘렀지만 세계 전역에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나이티드항공은 광고를 제작할 때마다 ‘랩소디 인 블루’를 쓰고,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늘 이 작품을 재생한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맨해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2000’에서도 주제곡으로 쓰였다. 미국의 음악사학자 테드 지오이아는 거슈윈을 두고 “의심할 여지 없는 천재”라며 “재즈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칼럼 전문은 arte.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재즈의 왕’이라고 불렸던 폴 화이트먼이 개최한 이날 공연은 ‘현대음악의 실험’이 주제였다. 당대 클래식 음악가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시류를 선보이기 위한 자리.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날고 기는 작곡가들이 공연에 참석했다. 총 26곡의 연주 리스트가 있었는데, 거슈인의 곡은 25번째 순서였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객석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이유는 많았다. 앞서 연주된 곡들이 모두 낯선 작품이었고, 하필 공연장 환기시설이 고장나 난방기구의 열기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유명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돼도 고개를 떨군 채 꾸벅꾸벅 조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관객의 집중력이 이미 바닥난 상태에서 ‘랩소디 인 블루’의 첫 마디가 울려 퍼졌고, 객석은 순간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음악회가 끝난 뒤 26세의 거슈윈은 미국의 스타 작곡가로 떠올랐다. 이 곡은 미국에서 3년간 84회 재연됐고, 음반은 100만 장 넘게 팔렸다. 하늘 높이 치솟는 클라리넷과 자유분방한 분위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뒤섞인 곡에 미국인들이 반한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불리는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곡에 대해 “곡 구조가 허술해 보여도 거슈윈은 차이콥스키 이래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썼다. 신이 그에게 영감을 전해 준 것 같다”고 호평했다. 사실 거슈인은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이 공연 전까지 관현악곡을 써본 적이 없고, 화성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다. 출판사에 취직한 뒤 악보를 팔기 위해 피아노를 친 게 전부. 주선율을 피아노로 치면 관현악 화음은 편곡자가 대신 써줄 정도였다. 1막 길이의 오페레타 등 대중음악만 쓰던 작곡가로, 클래식이나 재즈와는 거리가 먼 그를 알아본 건 화이트먼. 그에게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르는 관현악곡을 써달라고 요구했고, 거슈인은 별생각 없이 승낙했다. 하지만 그동안 관현악곡과 화성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던 거슈인은 어쩔 줄 몰라 시간만 흘려보냈다.
거슈윈은 초연을 두 달 앞두고도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화가 난 화이트먼은 신문 기사를 통해 재촉했다. 친구들과 당구를 치던 거슈윈은 ‘뉴욕 트리뷴’에 실린 “조지 거슈윈이 재즈 협주곡을 쓰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놀란 거슈윈은 곧장 보스턴행 열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들리는 마찰음과 덜컹거리는 소리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5주 만에 ‘랩소디 인 블루’를 완성했다.
거슈윈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일화지만 그는 늘 성장에 목말라했다.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 콤플렉스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랩소디 인 블루’를 초연한 뒤 모리스 라벨을 만나 스승이 돼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라벨은 거슈인에게 “당신은 이미 일류 거슈윈인데, 왜 이류 라벨이 되려 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최고의 음악 교육자였던 나디아 블랑제에게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클래식을 공부하면 되레 거슈윈만이 선보일 수 있는 재즈 선율이 망가질 것이란 게 이유였다. 거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거슈윈은 승승장구했다. 재즈를 기반으로 클래식의 다양한 장르를 엮어가며 명곡을 쏟아냈다. ‘피아노 협주곡 F장조’, 오페라 ‘포기와 배스’ ‘파리의 미국인’ ‘서머타임’ 등 걸작을 쏟아냈다.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던 그는 악성 뇌종양으로 쓰러졌고 수술을 받던 중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거슈윈이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이 흘렀지만 세계 전역에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나이티드항공은 광고를 제작할 때마다 ‘랩소디 인 블루’를 쓰고,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늘 이 작품을 재생한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맨해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2000’에서도 주제곡으로 쓰였다. 미국의 음악사학자 테드 지오이아는 거슈윈을 두고 “의심할 여지 없는 천재”라며 “재즈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칼럼 전문은 arte.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