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밀집지역. /사진=한경DB
사진은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밀집지역. /사진=한경DB
#. 서울 마포구에서 자취하며 직장에 다니는 천모씨(34)는 최근 기존에 살던 오피스텔에서 갱신 계약을 맺었다. 기존엔 보증금 500만원, 월세 65만원에 살고 있었는데 이번엔 월세가 3만원 올라 68만원이 됐다. 천씨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주던지 월세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월세만 5% 내에서 올렸다"며 "주변 전셋값은 내려 세입자들이 오히려 돈을 받는다는데 월세는 왜 계속 오르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있는 오피스텔, 빌라(연립·다세대) 등 월세가 오르고 있다. 전셋값이 하락해 역전세 현상이 벌어지는 것과는 상반된다. 일선 현장에 있는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역전세, 깡통전세, 전세 사기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전세보다는 월세를 찾는 실수요자가 늘었다"면서 "여기에 물가가 올라 임대료에 반영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역전세, 전세사기 무서워"…늘어난 월세 수요에 월세 '껑충'

3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오피스텔 '청담라인씨티' 전용 29㎡는 지난 20일 보증금 1억2000만원, 월세 21만원에 계약이 나왔다. 기존 보증금은 1억2000만원, 월세 17만원으로 월세가 4만원(23.52%) 뛰었다.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헤이븐 오피스텔' 전용 20㎡는 지난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74만원에 월세 계약을 갱신했다. 기존에는 보증금 1000만원에 70만원이었는데 이번에 갱신 계약을 체결하면서 4만원(5.71%)이 올랐다.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빌라 '논현리치빌' 전용 42㎡도 지난달 보증금 1억2000만원, 월세 58만원에 월세 계약을 맺었다. 이전 계약은 보증금 1억2000만원, 월세 53만원으로 기존보다 월세가 5만원(9.43%) 뛰었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월세 매물 안내문. 사진=뉴스1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월세 매물 안내문. 사진=뉴스1
최근 전셋값이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과 대조된다.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블레스하임 3차' 전용 29㎡는 지난달 3억5000만원에 전세 갱신 계약을 체결했다. 이전 계약은 4억원이었는데 이보다 5000만원 하락해 집주인이 돌려줘야하는 상황이었다. 강서구 화곡동 '강서구청 파크뷰 에버' 전용 15㎡는 이달 보증금 1억4500만원의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전 계약 보증금 1억6000만원 대비 1500만원 내렸다.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전세 사기 등에 대한 우려로 집을 구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전세보다는 안전한 월세를 찾고 있다"며 "하반기 역전세 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보니 월세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임대료에도 반영됐다는 설명도 있다. 용산구 한강로2가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최근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 않나. 오피스텔이나 빌라를 가진 집주인들은 월세를 조금이나마 올려 받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빨라진 전세의 월세화…전월세전환율도 '역대 최고치'

향후 월세는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반기에는 역전세 우려가 더 커서다. 전셋값이 최고조를 기록했던 시기가 2020~2021년인데 당시 계약을 맺었던 전세 계약의 만기가 돌아와서다. 역전세 관련 이슈가 계속되면서 실수요자들이 전세를 찾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화곡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를 구하는 임차인의 경우, 전셋값이 더 내려서 집을 구할 기회"라면서도 "전세 사기나 깡통 전세 등 공포감이 조성된 상황에서 월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의 경우 부담만 더 커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을 찾는 실수요자들이 '위험한 임대차 매물은 싫다'며 월세를 찾는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따라 오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전경. 사진=한경DB
서울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전경. 사진=한경DB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하반기 역전세 상황이 시장에서 예상하는 수준보다는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월세도 더는 오르기 어려울 수 있단 얘기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연초 이후 금리 동결 등으로 매매 가격이 급락한 것처럼 금리에 더 민감했던 전셋값 역시 연착륙 수준으로 크게 하락한 상황"이라면서 "현장 상황을 볼 때 이미 4월과 5월 들어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된 만큼 하반기 역전세 현상은 기존 우려보다는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자문위원은 "빌라나 오피스텔은 전세가율이 높은 주택 유형이기 때문에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역전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게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역전세나 깡통전세 이슈가 계속되면서 집주인들 사이에서도 보증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고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율, 월세 전환 비중 등을 감안하면 기존 예상보다는 역전세 상황이 부각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세의 월세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주택 월세 거래는 11만7176건(51%)을 기록했다. 전세는 11만2612건(49%)이다.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를 앞지른 것이다. 빌라(연립·다세대)는 해당 기간 월세가 46%(2만3941건)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보다 9%포인트 늘었고 단독·다가구는 같은 기간 월세가 72.6%로 전년 동기(67.8%)보다 더 올라 70%대를 넘어섰다.

오피스텔 전월세 전환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 오피스텔 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5월 오피스텔 평균 전월세 전환율은 5.85%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8년 1월 이후 역대 최고다. 서울 오피스텔 평균 전월세 전환율도 5.41%를 기록해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송렬/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