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이 버린 비대면 진료?…희비 엇갈린 스타트업들 [긱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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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코로나19로 성장했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팬데믹에서, 부족한 진료 인프라를 메우기엔 제격이었습니다. 관련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일부는 수백억대 ‘뭉칫돈’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끝났고, 이들 업체 역시 변곡점을 맞이할 때가 됐습니다.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그 시작입니다. 표면적으로 대다수 업체가 반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경영 시험대에 오른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의 동상이몽을 한경 긱스(Geeks)가 풀어봅니다.‘전자의무기록(EMR)’,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성패 중심으로
올라케어·나만의 닥터 등 사업 수평 확장…피보팅은 확대 전망
법제화 동력 저하 평가…스타트업 단체, 재진 조건 완화 ‘조준’
비대면 진료가 재진 환자 원칙을 중심으로 첫발을 뗀 가운데 관련 스타트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시작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의사단체와 스타트업 유관 단체의 입장이 엇갈리며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이 모인 단체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재진 중심 현행 체계는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이 비대면 진료 자체를 “국민 건강권에 위협이 된다”고 반발하고 있어 입장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현행 시스템이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확보한 스타트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업계 순위에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소수 업체가 수혜를 보더라도, 현행 시범사업 안이 비대면 진료 생태계 자체를 고사시켜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란 의견 역시 만만찮다.
20년 역사의 비대면 진료 공방
코로나19 탓에 갑작스러운 관심이 쏟아졌지만, 비대면 진료는 사실 의료계의 오랜 논란 대상이었다. 의료정책연구소의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 조사에 따르면, 국내서 비대면 진료 논의가 본격적으로 촉발된 시기는 2002년 의료인 사이의 원격 협진이 법적으로 허용된 때부터다. 이후론 20년 가까이 크고 작은 비대면 진료 추진안은 정치권에서 계속 제시됐다. 법제화는 번번이 실패했는데,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판도는 코로나19가 바꿨다. 쏟아지는 감염자 수와 질병 확산 우려가 정책을 변경시켰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2월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약 3년간 2만 5697개 의료기관에서 총 1379만 명을 대상으로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실시됐다. 2020년 이전까지 초기 단계거나 다른 사업을 영위하던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은 대량 투자금을 유치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업계 1위로 꼽히는 닥터나우는 지난해 6월 4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경쟁사 굿닥은 지난해 5월 21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고,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업체에 돈이 몰렸다.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30여군데까지 늘었다. 이 중 30%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설립된 업체로 추산된다.
지난 5월 정부가 코로나19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업계 일각에선 “비대면 진료의 성과로 플랫폼의 존재감이 증명됐다”며 2021년부터 국회서 발의되기 시작한 비대면 진료 허용안(의료법 개정안)의 통과를 기대했다. 지난 4월엔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 의원들이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에 국회엔 기존 재진 관련 법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총 5개의 심의 대상이 남았다. 하지만 갈등 중재자를 자처한 정부 시범사업의 등장으로 법안 논의는 잠시 주춤한 상태다.
'디지털 차트' 가진 업체가 생존한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시범사업에서 초진을 허용할 것인 지의 여부는 핵심 요소였다. 초진을 허용한다면 단어 뜻 그대로 첫 진료를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서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시범사업은 결국 산간벽지 거주자, 거동이 불편한 자 등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 진료부터(재진)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했다. 스타트업들이 이 지점에서 강한 반발을 일으킨 재진 요건이 까다롭게 정의돼서다. 동일 의료기관에 동일 질환으로, 만성 질환은 1년·기타 질환은 30일 이내 방문할 것이 요구됐다. 만성질환은 11개 특정 병명에 한정됐으며, 예외적 초진 허용도 363개 섬·116개 벽지에 해당하거나 휴일·야간에서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의학적 상담(처방 불가)만 허용하는 등 단서가 붙었다.시범사업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 1일, 닥터나우는 환자의 비대면 진료 신청 가운데 의사가 진료를 취소한 비율이 기존 17%에서 50%까지 늘었다. 진단에는 필연적으로 질병 코드가 부여된다. 같은 감기라도 이 코드가 달라지면 재진이 되지 않는 데다, 의료진 입장에선 까다로운 재진과 예외적 초진 해당 여부를 걸러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재진 요건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에 대면 환자를 하나라도 더 받겠다는 의사가 많았던 것이다. 닥터나우 측은 “전에 감기로 진료를 받았어도 다음 진료에서 감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 진료는 허용되지 않는 진료로 행위가 취소된다”고 전했다. 30일 이내 재방문 조건이 붙으며 경증 환자 대부분이 플랫폼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전자의무기록(EMR)’을 플랫폼에 연동할 수 있는지는 업체 생존을 가를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EMR은 환자의 진료 기록을 나타내는 일종의 ‘디지털 차트’다. 환자가 플랫폼에 입력할 수 있는 정보는 ‘머리가 아프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진료 요청 정도다. 의사 입장에서 질병을 예측하고 환자가 동일 병명의 재진에 해당할지 따지기가 쉽지 않다. 결국 환자 동의를 거쳐 병력 등이 기록된 EMR을 의사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플랫폼 내에 이런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공통적으로 코로나19 이전부터 병원 검색이나 예약 시스템 플랫폼을 구현하려 사업을 꾸린 곳들이다.
건강관리·커머스…‘제3의 길’ 택하는 곳도
굿닥 역시 10년을 매달려 EMR 시스템 연동을 준비해온 곳이다. 병원 검색 시스템으로 2012년 출범한 굿닥은 모회사 케어랩스가 최근 EMR 시장 3위 업체 포인트닉스와 인수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EMR 업체는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등 영역별로 강세를 띠는 곳이 다르다”며 “한 영역이라도 제대로 틀어쥐고 버티면 후발주자들이 버텨낼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근본적으로 EMR 업체 간 데이터 양식 표준화가 없으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성장성 역시 제한적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제3의 길’을 택하는 업체가 늘고 있는 이유다. 나만의닥터는 비대면 진료 첫날 의료기관의 진료 거절 비율이 3배 상승했던 곳이다. 이들은 지난해 혈당측정기 제조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선재원 나만의닥터 대표는 “EMR은 업력 20년 이상 회사들이 포진한 영역으로, 산업이 고착화돼있어 연계에 어려움이 있다”며 “B2C 사용자를 더 빠르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 ‘올라케어’를 운영하는 블루앤트도 맞춤형 건강관리와 정신 상담 영역을 타깃으로 잡았다. 지난 4월 심리상담 서비스를 개편하고, 기존의 건강기능식품 커머스 사업도 확대했다. 수평적으로 사업을 늘리는 업체들은 대부분 “원래 계획된 사업 확장”이라는 입장이지만, 시범사업 이후로 비대면 진료 서비스 자체가 위축된 점도 계기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위기감이 커진 업계에서 “1위 업체 닥터나우마저 피보팅(사업 전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쓰러지는 업체들…"내년 총선 마지막 기회"
스타트업이 각자도생에 나서는 분위기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없다면 형성된 시장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은 쏟아진다. 제시되는 해법은 2가지로 몰린다. 어디선가 강력한 자본력의 업체가 나타나, 2~3개 이상의 EMR 업체를 인수해 표준화를 도모하는 방안이 첫째다. 스타트업이 대부분인 생태계 특성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남은 대책은 그간 진행돼오던 법제화 마무리 작업이다.지난 4월 업계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던 시기다. 당시 장 대표는 윤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며 “카르텔은 깨진다”는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국회서도 법안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를 철회했던 초진 허용안을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했는데, 계류된 법안보다 스타트업 업계 입장을 더 대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정부가 먼저 시범사업 도입을 꺼내 들며 계도기간 3개월간 법안 통과의 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업계 반응이 “용산이 결국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을 버렸다”며 “뒤통수를 맞은 셈”이란 반응이 나왔었다.
의료법 개정의 담당 상임위원회는 보건복지위원회고,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다. 당시 정부로서는 의사단체와 의대 정원 수, 간호법 등 합의해야 할 사안이 많았고, 복지위 의원 역시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이들의 공통적 설명이다. 약사단체 역시 영향을 끼쳤다. 일부 의원실에선 “의사단체보다 약사단체와의 논의가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젠 하반기가 돼도 법안 개정은 정부도, 상임위에서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마지막 기회는 내년 총선 직후 한 달간 법안 논의의 장이 열릴 때밖에 없다”고 전했다.
비대면진료 업체가 뭉친 단체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에 따르면 이미 바로필·체킷 등 4개 업체가 관련 사업을 그만뒀다. 당장 법을 바꾸긴 어려우니 원산협이 집중하는 방향은 초진 범위 확대·재진 조건 완화다. 장지호 원산협 공동회장(닥터나우 이사)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사실상 비대면 진료 폐지 사업이다”라며 “시행 한 달 만에 서비스 정지 업체가 나올 정도로 시범안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을 계도 기간 내 알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