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들고 다니기에 너무 버거울 것 같네요.”

2021년 어느 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LG전자 애프터서비스(AS) 매니저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매니저들의 장비 가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깨에 짊어져 보니 가방은 예상보다 묵직했다. 간담회는 자연스레 가방 무게를 줄이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현장에서 문제를 포착해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구 회장의 일면이다.
될 사업만 키운 구광모, LG 몸값 160조원 불려
구 회장의 일상이 이렇게 변한 것은 2018년 6월 29일부터다. 갑작스럽게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에 이어 총수에 오른 시점이다. 당시 만 40세인 구 회장에게 LG그룹 임직원 26만 명의 시선이 집중됐다. 총수로서 연륜이 부족하다는 불안한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빠르게 이 같은 우려를 씻어냈다. 고비 때마다 과감하고 냉철한 결정을 내리면서 총수에 오른 지 5년 만에 LG그룹의 기업가치는 160조원가량 불어났다.

서울 영동고를 졸업한 구 회장은 미국 로체스터인스티튜트공과대로 유학을 떠났다. 2004년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구 선대회장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단숨에 LG그룹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그는 구 선대회장의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구 선대회장의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양자로 들어갔다.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 가문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한 뒤부터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았다. LG전자 뉴저지법인에서 핵심 생산기지인 경남 창원사업장까지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구 회장과 같이 근무한 이들은 한결같이 “오너 일가면서도 매우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LG트윈스를 응원하기 위해 동료들과 야구장도 종종 찾았다. 회식 때는 ‘소맥(소주+맥주)’을 직접 말기도 했다. 구 회장은 트윈타워에서 ‘패셔니스트’로 통했다. 한때 프라다 구두를 즐겨 신었고, 이탈리아제 수제 양복을 따로 맞춰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경테는 스위스 브랜드인 ‘마르쿠스 마리엔펠트’를 즐겨 쓴다고 한다. 구 회장은 40대 전후 기업인들과 술잔을 종종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가운데 정기선 HD현대 사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가장 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회장에 취임한 뒤 그룹의 사업 재편에 속도를 냈다. 2021년 4월 휴대폰 사업을 접기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LG그룹 기업사(史)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결단이었다. 누적 영업적자가 5조원에 달한 스마트폰 사업을 수술대에 올리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부에 속한 직원만 3000명을 웃돌았다. 하지만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어 LG전자 태양광·연료전지·수처리 사업, LG화학 편광판 사업을 접었다.

구 회장은 휴대폰 사업 등을 정리하면서 마련한 ‘실탄’으로 신사업에 투자했다.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과 전기차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전장사업을 담당하는 LG전자 VS사업본부 영업이익은 지난해 1700억원에서 올해는 300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2020년 출범한 배터리 계열사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은 130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 2위에 올랐다. 현재 LG그룹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 합계는 260조원으로, 구 회장이 취임한 2018년 6월 29일(94조1000억원)에 비해 160조원가량 불어났다.

김익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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