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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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래프를 하나 꼽으라면 ‘1인당 소득 그래프’가 알맞을 것이다. 0에 바짝 붙어 X축과 평행선을 그리던 이 그래프는 1800년대 들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로켓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와 함께 인류는 굶주림과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됐다.

비결은 기술 발전이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에서 시작해 내연기관, 전기, 통신, 의학, 반도체와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술 발전과 그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는 거리를 두고 멀리서 지켜본 역사다. 가까이 다가가면 굴곡이 보인다. 산업혁명으로 소수의 사람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일반 노동자 임금은 100년 동안 정체됐다.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더 궁핍해졌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지만 그사이에 낀 세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책마을] AI로 창출한 부…정부가 모두에게 나눠줘야 하는가
<권력과 진보>는 이렇게 ‘기술 발전이 진보’라는 통념을 뒤집는다. 기술 진보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세계적 경제학자인 대런 아세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다. 전작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좁은 회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저자인 사이먼 존슨은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 출신으로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다. 이들은 그동안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일부 계층한테만 돌아간 점을 지적하며,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늘 공동체에 최적의 결과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책은 지난 1000년의 역사를 살펴본다. ‘기술 발전의 흑역사’다. 농업 기술 발전이 당시 인구의 90%에 가까운 농민에게 부를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중세 말 바닷길이 열렸을 땐 대서양 교역으로 일부가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이면에는 수백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혁신이 진행 중인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책은 현대 사회의 업무 자동화와 정보의 홍수, 사생활 감시 등의 문제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정부가 시민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은 엘리트 계층이 신기술에 따른 이익을 독점하지 못했을 때 극대화됐다”며 “현대 국가는 권력을 동원해 개인의 정보 독점을 막고, 노동자 친화적인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조상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이유는 우리 앞에 있었던 산업 사회 국면들에서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와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냈기 때문이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담았지만, 책 내용에 비판할 부분이 없진 않다. 저자들은 “정부는 노동 현장의 능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반독점 규제, 최저임금제, 특정 기술 개발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의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보다 뛰어난 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경제사의 일부만 입맛에 맞게 골라 분석했다는 문제도 있다. 1960년에 세계 인구 50억 명 중 40억 명이 하루 2달러로 생활했지만, 1970년대 신자유주의 기조가 들어선 이후 현재 이 비중은 80억 명 중 10억 명으로 줄었다. 단기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도 장기적으론 이익을 공유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저자들은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간과했다. 부에 대한 열망은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자 인간 본성이다. 자유시장에선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든 수많은 기업이 경쟁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을 찍어낸다. 이 과정에서 재화와 서비스 가격은 내려가고, 가난한 사람들도 실질 소득이 늘어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아세모글루와 존슨이 주장하듯 탁상공론이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안시욱/임근호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