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배제' 놓고는 "노력 물거품" vs "공포감 줄어"
킬러문항 지침 여전히 모호…"문항 모형·세부 기준 공개해야"
오는 11월 16일 치러지는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세부 시행계획이 2일 공고될 예정인 가운데 교육당국이 올해 수능 출제 지침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수능을 약 5개월 앞두고 수험생들의 우려를 덜기 위해 '킬러문항'이 배제된 수능 문항 모형 등을 하루 빨리 제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올해 수능에서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밝히고 지난달 26일에는 최근 3년간 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출제됐던 킬러문항 예시 22개(국영수 기준)를 공개했지만 현장에서는 문항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나온다.

교육부는 고차원적 접근 방식, 추상적 개념 사용, 과도한 추론 필요 등을 이유로 내세워 이들 킬러문항 22개를 골라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험생 사이에서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문항들이 킬러문항에 포함됐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한 학생은 수험생 커뮤니티에 "적어도 예시 문항을 줘야 한다.

핀셋 제거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대책도 없다"며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일언반구가 없으면 어떻게 대비를 하란 말이냐"라고 지적했다.

원조 일타 강사 출신인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도 지난달 27일 KBS TV '더라이브'에 출연해 "9월 모의고사에서 공정 수능의 모델이 나올 텐데 7월, 8월에 빨리 그 모형을 공개해 혼란을 줄여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29일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 단체는 교육부가 공개한 킬러문항 22개 가운데 수학 문항 9개를 현장 교사들과 분석한 결과 킬러문항으로 보기 어려운 문제가 3개 발견됐다고도 주장했다.

가령 6월 모의평가 수학 '미적분' 22번 문항의 경우 문제해결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킬러문항에 꼽혔으나 이 문항의 논리적 연결성이 강하기 때문에 킬러문항으로까지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수능 수학 '확률과 통계' 30번 문항도 '풀이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는 이유로 킬러문항에 포함됐으나 사걱세는 이 문항 역시 "경우의 수 문제에서 이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킬러문항 지침 여전히 모호…"문항 모형·세부 기준 공개해야"
토론에 참석한 이선영 경기과학고 교사는 "교육부가 킬러문항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모호해 학교 현장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진아 매천고 교사도 "교육부는 '문제해결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거나 '고차원적 접근이 요구된다'는 등 모호한 기준을 제시했다"며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킬러문항의 근거를 성적별 정답률, 성취 기준 충족 여부 등을 통해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본창 사걱세 정책국장은 "평가원은 수능 문항에 대한 평가 수준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적어도 킬러 문항 예시를 들 것이었으면 사용된 성취 기준과 성취 수준과 대비시켜봤을 때 어떤 점이 벗어났는지 알려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상위권의 변별력과 일반학생의 변별력 차이가 어느 정도 됐는지 수치로 나오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며 "가령 비문학이 풀기 어려웠는데 상위권 학생들이 이것을 다 맞췄다면 사교육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렵게 출제됐지만 상위권이 푼 문제였다면 변별력이 있는 것이고, 이런 부분을 설명하면 수험생들은 (킬러 문항이 아니라고) 납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 방침 자체를 놓고서도 수험생들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 고3 학생은 "6월 모의평가 기준 전교 1∼7등 친구 다수에게 물어봤는데, 지금까지 갈고닦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이 중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조차도 준킬러 대비를 위해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학생은 "교육부가 공개한 킬러문항 사유를 보면 과도한 실수 유발이나 시간을 뺏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실수를 줄이고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을 키워왔고 그런 흐름과 어긋나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평소 모의고사가 과목 평균 3등급이 나온다는 한 고3 학생은 "우리랑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TV를 봐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며 "킬러문항 영향을 받는 애들은 전체 1%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공립고 3학년 담임 김모 씨는 "여기는 대체로 4∼6등급을 받는 아이들이 많아 킬러문항이라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 상황이 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풀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난다고 생각해 수능 공포감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