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릴케…"100년 전 BTS 같은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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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의 정수’ 릴케의 모든 것, <두이노의 비가>에 담겨 있죠”
20년 만에 릴케 <두이노의 비가> 새로 번역한 시인·번역가·교수 김재혁
20년 만에 릴케 <두이노의 비가> 새로 번역한 시인·번역가·교수 김재혁
시인이자 번역가인 김재혁 고려대 독문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최근 번역한 <두이노의 비가>를 살펴보고 있다. 구은서 기자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오늘날에는 '일리 커피' 탄생지이자 '이탈리아의 커피 수도'로 불리지만 과거 이곳은 유럽의 물자가 드나드는 주요 항구도시, 동유럽의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 해안가 절벽을 지키고 서 있는 '두이노 성(城)'은 어떤 시인들에게 세상 끝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듬을 최후의 요새 역할을 했다. 옛 두이노 성 인근에는 유배 당한 단테가 생각에 잠기던 '단테 바위'가 남아 있고, 윤동주도 사랑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곳에서 시집 <두이노의 비가>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923년 이 책을 세상에 내놓고 3년 후 릴케는 세상을 떠났다.
최근 <두이노의 비가>를 번역, 출간한 김재혁(64) 고려대 독문학과 교수를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이 시집에는 릴케의 역사가 녹아있다"며 "릴케가 서정시의 정수라면, <두이노의 비가>는 그 릴케의 정수인 셈"이라고 했다.
시집에는 '제1비가'부터 '제10비가'까지 총 1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10년이 걸린 대작이다. 릴케는 두이노 성의 소유주 탁시스 후작부인의 초청으로 성을 방문해 몇몇 비가를 썼고 이후 스위스 뮈조 성에서 시집을 완성했다.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는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불린다.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 최근 BTS 멤버 지민이 뮤직비디오 속에서 릴케의 시를 몸에 적은 채 춤을 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서정시는 체험을 바탕으로 쓰는 시이고, 릴케는 숱한 여행과 방랑을 전부 시로 남겼다"며 "초기 사랑시, <기도시집> 같은 명상시, 이후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일하며 쓴 사물시 등 그간 릴케의 역사를 품은 게 <두이노의 비가>로, 사물과 사랑에 대한 통찰이 다 들어가 있다"고 평가했다.
릴케와 <두이노의 비가>는 당대에도 크게 사랑받았다. 김 교수는 "릴케는 지금으로 치면 BTS 같은 아이돌"이라며 "1923년 당시 <두이노의 비가> 초판을 1만부나 찍었을 정도였다"고 했다. 릴케의 역작이자 김 교수의 역작이다. 릴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40년간 릴케의 시를 연구·번역해온 김 교수는 "릴케 전공자로서 퇴직을 앞두고 그간의 시간을 마무리 짓는 작업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000년 출판사 책세상의 릴케 전집에 싣기 위해 <두이노의 비가>를 번역했던 적이 있다. 책이 절판되자 "릴케의 매력을 함축한 이 시집은 꼭 다시 내야 한다"며 약 20년 만에 완전히 새로 번역해 민음사 세계시인선으로 출간했다.
그는 “20년간 번역을 위한 외적 환경이 좋아졌고, 나 자신도 질적으로 성숙해 완전히 새로운 번역을 내놓는 게 가능했다”고 했다. 그 사이 인터넷이 발달해 시집 초판, 릴케의 친필본 재현본 등을 해외 희귀 서적 거래 사이트 등에서 수집할 수 있었다. 과거 릴케학회의 최신본을 참고한 데서 나아가 원문을 세세히 비교하며 작업했다.
문장부호까지도 되살렸다. 김 교수는 "당시 시는 낭독을 전제로 했고 릴케는 특히나 문장부호를 중시했다"며 "시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어 문장부호는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세미콜론(;) 등 한국어 독자에게 다소 낯선 문장부호는 책의 2부에 실은 전문 해설에서 그 의미를 해독해준다.
김 교수는 "릴케의 시는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시는 아니다"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을 쓴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지나치게 어렵다'고 비판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렇기에 상세하고 친절한 해설에 중점을 뒀다. 김 교수가 쓴 전문 해설은 릴케의 시 세계를 처음 방문한 독자에게도 다정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해설을 따로 실은 덕에 시 본문에 각주가 없어 시만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번 번역본의 장점이다.
그런데 "정확한 시 번역을 위해 가장 신경 썼던 점은 무엇인가요?" 질문하자 김 교수의 답은 뜻밖에 단호했다. "정확한 시 번역이란 없다"는 것이다.
"릴케가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은 단 세 줄짜리예요.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렇게 시작되죠. 그런데 이 '순수한'을 의미하는 독일어 'reiner'의 발음은 자신의 필명 '라이너(René)'와 비슷해요. 릴케가 자신을 장미에 빗댄 거예요. 어디에 피느냐에 따라 다른 향기와 빛깔을 내는 장미처럼, 시인도 세상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시로 표현하는 존재니까요. 그런데 한국어로는 이런 숨은 의미를 드러낼 길이 없죠."
독일어 자체가 한국어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언어이기도 하다. "독일어에서 식사 메뉴를 고르려 '뭐 생각해둔 거 있니?'고 묻는 표현을 한국어로 직독직해하면 '표상 있니?'로 번역돼요. 워낙 추상적 단어가 많고 한국어와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다르죠. 영어나 스페인어에 비해 사용자가 적으니 사전 등 번역에 도구로 삼을 책의 발전도 상대적으로 더디고요."
그럼에도 김 교수는 "시 번역은 불가능하다 해도 해야 하는 일"이라며 "텍스트는 번역을 통해 완성돼간다"고 했다. 번역가의 적극적 해석을 통해 시의 가능성이 확장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제일 무책임한 번역은 사전을 찾아 그냥 낱말만 바꿔놓는 것으로, 그건 번역기를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때로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시를 읽을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게 번역가가 가진 책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제5비가' 중반 곡예사의 모습을 묘사하는 한 행 "öffentlich unter den Schultern"을 두고 그는 한동안 고민을 이어갔다. 앞뒤 문맥을 감안해 "누구나 볼 수 있게 양어깨가 떠받쳐진 채"로 번역했지만 김 교수는 "릴케가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써뒀기 때문에 내가 20년 전 번역한 표현과 다를 뿐더러 아마 번역자마다 다르게 번역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언어, 국가, 시대의 시를 해석한다는 건 암호를 해석하는 일과 마찬가지일 텐데, 40년간 릴케를 탐구해온 그는 여전히 릴케를 말할 때 흥분과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번역을 할 때면 오로지 릴케만을 생각하며 지낼 수 있어 낙원에 머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릴케 얘기를 하실 때 설렘이 느껴진다'는 말에 그는 환히 웃었다. "저희 학생들도 저한테 똑같은 말을 하곤 하는데…. 릴케의 시는 어려워서 더 재밌지 않나요?"(웃음)
김 교수는 과거 자신의 시 '번역의 유토피아'에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건넌다는 것은/늘 실패한 첫사랑입니다." 그에게 번역과 시란 실패할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일이다.
그는 1994년 '현대시'로 등단한 시인이다. 시집으로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딴생각> <아버지의 도장>이 있다.
내년 등단 30주년을 맞은 그는 시 창작 등 집필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 교수는 "시는 계속해서 쓰고 있다"며 "2006년에 냈던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처럼 한국 시와 릴케의 연결고리를 탐색하는 작업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