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역설적으로 동·서 진영 간 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줬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핵전쟁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두 진영에 심어졌다. 소련은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가 일어난 뒤 공산권 대열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증폭했다. 이런 일련의 일을 겪은 뒤 미국, 소련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바르샤바 조약국 35개국은 동·서 간 긴장 수위를 낮추기 위해 1972년 11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마주 앉았다. 1975년 최종 결론에 도달해 헬싱키 협약을 내놨다.

모두 10개의 원칙으로 이뤄졌다. 주요 내용으로 △국경선 불가침 △분쟁의 평화적 해결 △경제·과학·기술 협력 촉진 △인권 보호, 사상·양심·신념의 자유 보장 등이 담겼다. 헬싱키 협약은 데탕트의 정점으로 꼽힌다.

국경선 불가침이 포함된 것은 소련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됐다. 소련은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국경을 유지하고 독일 통일을 막는 것이 지상 과제였기 때문에 헬싱키 협약을 앞장서 추진했다. 그러나 역사의 물줄기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인권 보호와 사상의 자유로운 교류를 규정한 항목이 소련과 공산권 위성국가에 나비 효과를 부른 것이다.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등 민간단체들은 헬싱키 협약을 근거로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의 인권을 감시하고, 수용소의 가혹한 인권 탄압 실태를 고발하고 폭로했다. 인권과 자유 존중 목소리는 소련과 동유럽의 변화를 이끌었고, 결국 이들 공산권 국가의 붕괴와 독일 통일을 가져오는 주요 원인이 됐다.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이 철권 같던 공산 전체주의를 무너뜨리는 긴 과정을 ‘헬싱키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대북 정책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핵 문제와 남북 경제 협력, 북한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 목표로 추진하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 최악의 북한 인권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는 금기시한 사안이다. 김 후보자의 방침이 북한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