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병의 정책프리즘] 사교육 시장을 배워야 사교육이 줄어든다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연일 이슈다. 교육부는 사교육 과열을 잡기 위해 소위 ‘킬러 문항’의 출제를 금지하고, 점검위원회를 신설해 출제 단계에서부터 이들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걱정되는 점이 있다.

우선 신설되는 위원회는 불필요한 ‘옥상옥’이 될 공산이 크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수능 시험만큼 심혈을 기울이는 문제도 없다. 매년 수백 명의 교사와 교수가 한 달 이상을 문제 출제에 몰두하고 오·복답 시비, 시중 문제집과의 유사성 여부 등을 삼중·사중으로 검토한다. 수능 오류가 나오거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 전 국민의 비판을 받는다. 문제를 만들 때부터 극도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점검위원회 위원들이 이들보다 더 높은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까. 자칫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만 초래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점검위원회의 실효성도 문제지만, 킬러 문항을 없애면 사교육이 줄어들지는 더욱 의구심이 든다. 사교육 과열의 핵심 원인은 가고 싶은 대학으로 가는 길이 너무 ‘좁고 치열’한 데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입시에 내가 다닐 학교와 전공학과, 직업적 선택이 모두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어떤 수준의 문제를 내놔도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사교육 경감 대책의 핵심은 학생들이 가고 싶은 대학에 마음껏 갈 수 있도록 ‘선택과 기회의 폭’을 넓혀주는 데 있다. 학생들의 대학 간 이동이 쉽고, 다른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원하는 교수의 수업을 듣고 학점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입시에 대한 과도한 경쟁이 상당히 누그러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대학은 제도적 울타리와 칸막이를 걷어내고 개방성, 유연성과 통합성을 지닌 플랫폼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교육 강의 플랫폼 ‘MOOC’나 ‘OCW’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원격 강의가 가능한 오늘날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하면 대학 교육의 품질도 담보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대학 학사행정의 유연화와 개방이 상위 대학만 살아남고 하위 대학의 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의 개방과 통합은 적어도 강의에서만큼은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이루고 대학의 특성화를 촉진할 공산이 크다.

사교육 시장은 이미 학생들의 선택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대형 학원들은 오프라인 강의와 온라인 강의를 동시에 개설해 시간적·공간적으로 강의 수강에 제약이 있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명 강사들도 특정 학원에 묶여 있지 않고 여러 학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강의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특정 인기 강사의 강의를 등록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지 않는 이유는 온라인 강의나 또 다른 유명 강사의 수업 등 다양한 대안과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이 사교육 시장을 배워야 사교육이 줄어든다. 현재의 견고한 대학 서열화와 경직적인 학사제도를 고쳐야 한다. 사교육 과열을 줄이고 싶다면 정부도 대형 학원들처럼 학생들에게 유연하고 폭넓은 선택권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