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김모씨(64)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만난 여성 A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교제한 지 수일 만에 헤어졌지만, A씨는 “병원비가 필요한데 돈을 빌려주면 교제해주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김씨는 A씨에게 6개월에 걸쳐 2000여만원을 송금했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노인과 관련된 범죄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노인들의 재산을 노리는 ‘실버 사냥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자산을 굴리거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은퇴자들이 주요 타깃이다.

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61세 이상 노인 대상 재산 범죄는 2017년 5만7661건에서 2021년 7만9188건으로 5년 새 2만2000건(37.3%)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재산 범죄 피해자 중 노인 비율도 같은 기간 10.6%에서 13.8%로 늘었다.

김씨처럼 관계 형성이 어려운 노인에게 친밀감을 앞세워 접근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올 4월 제주에 거주하던 B씨(78)는 요양보호사를 자처하던 60대 남성에게 속아 약 3000만원을 빼앗겼다. 이 남성은 “자신이 돌봐주겠다”며 B씨에게 접근해 작년 9월부터 올 3월까지 54차례에 걸쳐 B씨의 통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정년퇴직하거나 신체 능력 저하로 근로 소득이 줄어든 노인에게 접근해 “재산을 불려주겠다”며 유혹하기도 한다. 특히 코인 등 신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은 적은 노력에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넘어가기 일쑤다. 한모씨(63)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C씨로부터 “코인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한씨는 C씨로부터 확인서를 받고 1500여만원을 보냈다. C씨는 4년간 차일피일 변제를 미뤘고 끝내 한씨는 지난해 형사고소를 했다.

변변한 소득 수단이 없는 노인들이 재산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7년 41만4778명이었던 재산 범죄자는 32만9808명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60세 이상의 고령 재산 범죄자는 4만9502명에서 6만1244명으로 뛰었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에 대한 실태 파악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피해를 본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하기 힘들어서다. 서울가정법원 판사를 지낸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노인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현황 분석이 먼저”라며 “가족들의 공백을 사회적 제도로 채워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까운 사람에게 범죄를 당하고도 속앓이에 그치는 노인이 적지 않다”며 “노인들과 접점이 많은 복지관 등에서 사기꾼 특성이나 흔한 수법을 알려주고 대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