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 타고 '깡'으로 버텼다…자본시장 바다 항해하는 '금융선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부친의 혹독한 인생철학 … 참치잡이배서 ‘도전’ 배워
“작은 계열사 키우겠다” … 한국투자證 인수 ‘신의 한수’
매출 20배로 키우며 국내 첫 초대형 IB로 성장
“인사가 만사” 직원채용 직접 챙기는 독서광
한국금융지주 계열사 직원들은 입사 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란다. 회사 오너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신입뿐 아니라 경력직 직원들의 최종면접도 한 명 한 명 챙긴다. ‘인사가 만사다’라고 하는 경영인은 많지만 직원 채용에 이렇게 깊숙이 참여하는 오너는 찾기 힘들다.
김 회장은 매주 화요일 스케줄을 일부러 비워놓는다. 정기 신입사원 공채, 경력직 채용, 전역장교 전형, 해외대학 전형 등 계열사 채용 최종면접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 위해서다. 화요일 하루는 향후 미래 인재를 위해 아예 비워놓는 셈이다. 대학 채용설명회 현장을 직접 찾는 것도 김 회장이 세운 원칙이다. 2003년부터 20년간 매년 국내 주요 대학교 채용설명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김 회장의 이런 행보는 외부 행사에 잘 나오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그의 세평과 맞물리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김 회장은 2017년 모교인 고려대에서 열린 채용설명회에서 “경영은 곧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람만 잘 뽑고, 잘 관리하면 나머지는 그 사람들에 의해서 알아서 돌아간다”며 본인의 경영 철학을 설명했다. 아버지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배운 원칙이다.
“나는 학창시절 한량이었다. 4년 동안 잘 놀다가 졸업을 앞둔 시기에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원양어선을 탔다. 하루 18시간씩, 6시간만 자고 꼬박 일했다. 당시 목표는 명란 450톤(t)이었는데 두 마리를 잡아도 명란은 고작 60그램(g)이 나왔다. 처음엔 말이 안 되는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선원들은 결국 그 목표를 달성했다. 선원들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자들이었다. 충격을 받고 그때 처음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2019년 서울대 채용설명회 ) 선원 생활을 마친 후 동원산업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2년간의 직장생활 뒤 김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 유학길에 오른다. 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를 마친 1991년, 당시 원양어선업계 1위인 동원산업 대신 한신증권(동원증권의 전신)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당시 한신증권은 업계 6~7위권 중·소형 증권사였다.
김 회장은 2010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1991년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마치고 두 회사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동원산업은 원양어선업계에서 이미 정상에 올라 있었고 증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증권의 입지가 오히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고, 고객과 함께 커갈 수 있는 사업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증권사에서 채권, IT, 기획, 뉴욕사무소 등 여러 분야를 거치며 실무를 익힌다. 2003년엔 동원금융지주를 세우고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선정된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4조원 이상으로 확충하며 초대형 투자은행(초대형IB) 요건을 갖췄다. 2017년 국내 첫 초대형IB로 선정됐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8조원. 국내를 대표하는 초대형 투자은행이 됐다. 증권사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벤처캐피털, 헤지펀드, PEF(사모펀드) 운용사 등 다양한 사업부문에서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업계에선 김 회장을 향해 “금융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오너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밑바닥부터 쌓아온 실전 업무 경험 때문이다. 경영 실적도 착실히 성장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총매출은 2005년 1조2778억원에서 지난해 기준 25조281억원으로 17년 사이 약 20배 불어났다. 업종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가 쉽지 않지만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따지면 한국투자금융은 그룹 모태인 동원그룹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투자금융그룹 주요 임직원은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대표도 예외로 빼주지 않는다. 부서장은 홀수달마다, 본부장급 이상 임원은 매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 독서가 인재를 키우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게 김 회장의 철학이다. 계열사 한 대표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쁜 와중에 독후감을 써야 할 땐 회의감도 들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독서로 얻게 되는 게 더 많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우람한 덩치만큼 술도 잘 마신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년마다 그룹사 직원 전체가 참여하는 워크숍을 여는데,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참석한 전체 임직원과 술잔을 기울인다. 워크숍 다음날 아침 임직원들과 함께 산을 오른 김 회장이 정상에서 막걸리를 마신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확대는 물론, 스티펄과의 합작을 통한 미국 인수금융 시장 진출 등 선진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겠다. 싱가포르, 홍콩, 뉴욕 등 핵심 거점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정비하고 보완해서 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가 효과적으로 지원될 수 있게 하겠다.”
김 회장이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밝힌 해외 진출 전략과 각오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작은 계열사 키우겠다” … 한국투자證 인수 ‘신의 한수’
매출 20배로 키우며 국내 첫 초대형 IB로 성장
“인사가 만사” 직원채용 직접 챙기는 독서광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의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장. 지원자들에게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데 노트북에 부지런하게 무언가를 적고 있는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인사부 직원은 아니다. 노트북을 보니 최종면접까지 올라온 신입 사원 후보자의 인적사항, 장단점, 특징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한국금융지주 계열사 직원들은 입사 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란다. 회사 오너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신입뿐 아니라 경력직 직원들의 최종면접도 한 명 한 명 챙긴다. ‘인사가 만사다’라고 하는 경영인은 많지만 직원 채용에 이렇게 깊숙이 참여하는 오너는 찾기 힘들다.
김 회장은 매주 화요일 스케줄을 일부러 비워놓는다. 정기 신입사원 공채, 경력직 채용, 전역장교 전형, 해외대학 전형 등 계열사 채용 최종면접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 위해서다. 화요일 하루는 향후 미래 인재를 위해 아예 비워놓는 셈이다. 대학 채용설명회 현장을 직접 찾는 것도 김 회장이 세운 원칙이다. 2003년부터 20년간 매년 국내 주요 대학교 채용설명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김 회장의 이런 행보는 외부 행사에 잘 나오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그의 세평과 맞물리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김 회장은 2017년 모교인 고려대에서 열린 채용설명회에서 “경영은 곧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람만 잘 뽑고, 잘 관리하면 나머지는 그 사람들에 의해서 알아서 돌아간다”며 본인의 경영 철학을 설명했다. 아버지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배운 원칙이다.
원양어선 선원으로 사회생활 시작
김 회장의 학창 시절은 다른 오너 가문과 크게 달랐다. 20대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면서 동원그룹을 일군 김 명예회장은 자신의 아들도 우선 인생을 배우기를 바랐다. 김 회장이 대학교 4학년이던 1986년 겨울 북태평양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선원으로 승선한 것도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제대로 사회생활 한 번 해보자”는 각오로 원양어선을 탔다고 한다. 배 위에서 하루 18시간 넘는 중노동을 약 4개월간 버텼다.“나는 학창시절 한량이었다. 4년 동안 잘 놀다가 졸업을 앞둔 시기에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원양어선을 탔다. 하루 18시간씩, 6시간만 자고 꼬박 일했다. 당시 목표는 명란 450톤(t)이었는데 두 마리를 잡아도 명란은 고작 60그램(g)이 나왔다. 처음엔 말이 안 되는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선원들은 결국 그 목표를 달성했다. 선원들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자들이었다. 충격을 받고 그때 처음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2019년 서울대 채용설명회 ) 선원 생활을 마친 후 동원산업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2년간의 직장생활 뒤 김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 유학길에 오른다. 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를 마친 1991년, 당시 원양어선업계 1위인 동원산업 대신 한신증권(동원증권의 전신)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당시 한신증권은 업계 6~7위권 중·소형 증권사였다.
김 회장은 2010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1991년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마치고 두 회사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동원산업은 원양어선업계에서 이미 정상에 올라 있었고 증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증권의 입지가 오히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고, 고객과 함께 커갈 수 있는 사업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증권사에서 채권, IT, 기획, 뉴욕사무소 등 여러 분야를 거치며 실무를 익힌다. 2003년엔 동원금융지주를 세우고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한국투자증권 합병으로 ‘퀀텀점프’
금융인으로서 첫 성과를 낸 것은 2005년 한국투자증권 인수다. 김 회장은 당시 경영난에 휘청이며 공적자금으로 버티고 있던 한국투자증권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다. 지분 100%를 사는 데 5462억원을 썼다. 한국 금융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M&A’로 꼽힌다. 인수 가격도 김 회장이 직접 결정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 통합 이후 승승장구했다. 2009년 지급결제업무를 시작했고, 투자매매업·투자중개업 등 장내파생상품 인가를 취득했다. 2011년에는 전담중개업자 자격 요건을 갖췄다.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선정된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4조원 이상으로 확충하며 초대형 투자은행(초대형IB) 요건을 갖췄다. 2017년 국내 첫 초대형IB로 선정됐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8조원. 국내를 대표하는 초대형 투자은행이 됐다. 증권사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벤처캐피털, 헤지펀드, PEF(사모펀드) 운용사 등 다양한 사업부문에서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업계에선 김 회장을 향해 “금융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오너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밑바닥부터 쌓아온 실전 업무 경험 때문이다. 경영 실적도 착실히 성장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총매출은 2005년 1조2778억원에서 지난해 기준 25조281억원으로 17년 사이 약 20배 불어났다. 업종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가 쉽지 않지만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따지면 한국투자금융은 그룹 모태인 동원그룹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직원 매달 독후감 … “처음엔 고통, 나중엔 얻는게 많아”
김 회장은 ‘독서파’ 기업인이다. 월평균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180㎝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김 회장이 독서삼매경에 빠진 모습은 기묘하다. 김 회장은 일요일엔 여의도 본사로 출근하는데, 오로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는 “일요일에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기 때문에 내 시간을 온전히 다 쓸 수 있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독서 습관은 아버지인 김 명예회장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됐다. 김 명예회장은 어릴 적부터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아들을 가르쳤다. 김 명예회장은 평소 “문학책 300권, 역사책 200권, 철학책 100권 총 600권은 읽어야 한다”는 지론을 설파했다.한국투자금융그룹 주요 임직원은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대표도 예외로 빼주지 않는다. 부서장은 홀수달마다, 본부장급 이상 임원은 매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 독서가 인재를 키우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게 김 회장의 철학이다. 계열사 한 대표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쁜 와중에 독후감을 써야 할 땐 회의감도 들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독서로 얻게 되는 게 더 많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우람한 덩치만큼 술도 잘 마신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년마다 그룹사 직원 전체가 참여하는 워크숍을 여는데,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참석한 전체 임직원과 술잔을 기울인다. 워크숍 다음날 아침 임직원들과 함께 산을 오른 김 회장이 정상에서 막걸리를 마신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해외 진출 사활 … “금융중심 미국에서 승부보자”
김 회장의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해외 진출’이다. 김 회장은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글로벌 IB(투자은행) 스티펄과 합작사 설립 계약을 체결했고, 올 1월에는 스티펄파이낸셜과 함께 미국 뉴욕에 조인트벤처(JV)인 SF크레딧을 설립했다. 우선적으로 인수금융 및 사모대출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8년까지 SF크레딧의 자본금을 2억달러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오랜 기간 투자해온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도 공을 쏟고 있다. 베트남 시장에는 2010년 업계 50위권에 머물던 현지 EPS증권을 인수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사명을 KIS베트남으로 바꾼 뒤 현지 대형 증권사로 성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도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5월엔 한국투자증권이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IDX)와 선진 금융상품 도입과 제도 개선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베트남,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확대는 물론, 스티펄과의 합작을 통한 미국 인수금융 시장 진출 등 선진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겠다. 싱가포르, 홍콩, 뉴욕 등 핵심 거점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정비하고 보완해서 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가 효과적으로 지원될 수 있게 하겠다.”
김 회장이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밝힌 해외 진출 전략과 각오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