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에서 찾아가세요"…성남 아파트서 '택배 대란' 또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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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 중원구서 택배 갈등
차량 지상 통행 금지에…택배 상자들, 무더위 속 방치
관리 사무소 "할 말 없어"…택배 노조 "양보 없다"
차량 지상 통행 금지에…택배 상자들, 무더위 속 방치
관리 사무소 "할 말 없어"…택배 노조 "양보 없다"
"택배 빨리 안 찾아가면 폐기한다니까. 급한 마음에 오토바이 타고 가지러 나왔어요."
지난 3일 찾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 A씨는 배송 온 택배를 찾기 위해 문 앞이 아닌 정문 앞 파란색 천막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와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해외 유학 생활 중인 아들이 택배를 보냈는데 일정 기간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한다길래 급하게 왔다"며 "집에서 한참 떨어진 천막까지 나와 일일이 택배를 찾아야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낮 최고 35도까지 치솟은 이날 오전 10시께. 천막 안에는 택배 상자 1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송장이 바래질 정도로 오래된 택배 상자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배송된 고등어나 감자 등을 비롯해 소금자루까지 택배로 쌓여 있었다. 아파트 주민 40대 B씨는 "단지 주민들이 많이 불편해한다"며 "앞으로 더워질 텐데 혹시라도 음식 같은 배송품은 상하는 등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다"라고 했다.
택배 업무를 정상적으로 마쳐야 하는 택배 기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단지 내에서 만난 일양택배 택배기사 C씨는 "이 아파트 몇몇 단지만 현수막 쳐진 곳에 택배를 두기로 협의했다"며 "아파트 단지 지상에 아예 못 들어가고 차도 못 대니 배송 업무가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이른바 '공원형 아파트'다 보니 택배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게 문제가 됐다. 지난달 1일부터 소방차, 구급차 등 긴급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은 단지 지상 통행이 금지됐다. 주민 찬반투표로 결정됐다. 입주민들이 위험하단 이유에서다.
택배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차량 높이는 2.5m인데 주차장 층고는 2.1m로 낮기 때문이다. 신축 아파트지만 2018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 국토교통부의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와 택배사는 이번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입대의는 택배사가 저상 차량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입대의 측은 단지 내 현수막 게재를 통해 "올해 6월 1일부터 택배차량은 보행자 도로로 진입을 금지한다"며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택배 차량은 지하주차장으로 출입 가능한 저상형 차량으로 조치 바란다"고 덧붙였다.
반면 택배사는 '등·하교 시간을 피할 테니 지상에 택배차를 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택배사 관계자는 "저상 차량 이용은 비용이 많이 들고 택배기사들의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며 "현재 2, 3단지는 지상에 택배 차량 대는 것을 허용했으나 1, 4, 5단지에서 협의를 안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선범 택배 노조 정책국장은 "몇몇 단지에서 지상에 택배 차량을 잠깐 대는 것도 허용을 안 해주기에 이 사태가 났다"며 "과도한 택배 서비스 요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마련된 해결책은 없다"고 전했다.
택배를 제대로 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건 입주민들이다. 그렇다 보니 입주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시적으로 지상 주차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아무리 그래도 지상 주차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택배 갈등은 새 아파트마다 불거지는 문제가 됐다. 앞서 2021년 5000가구에 육박하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 단지 내에서도 '택배 갑질' 사건이 일어났다. 이 아파트 입구와 경비실 앞에 택배 상자 1000여 개가 놓인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해당 사건이 불거졌다. 이후 2년이 지난 최근 택배사 측은 어쩔 수 없이 저상 차량으로 교체했다. 단지 자체에선 택배 기사 인력을 로봇으로 교체하는 방안도 강구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힐스테이트푸르지오수원'(2586가구)에서도 아파트 정문 앞에 택배 물품이 쌓여 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택배 대란은 한 달이 넘도록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강근식 강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택배 대란 문제를 두고 "처음 아파트 설계부터 잘못된 사례"라며 "공원형 신축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높이를 늘리거나 지상 택배 차량 주차 공간을 두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성남)=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
지난 3일 찾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 A씨는 배송 온 택배를 찾기 위해 문 앞이 아닌 정문 앞 파란색 천막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와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해외 유학 생활 중인 아들이 택배를 보냈는데 일정 기간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한다길래 급하게 왔다"며 "집에서 한참 떨어진 천막까지 나와 일일이 택배를 찾아야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낮 최고 35도까지 치솟은 이날 오전 10시께. 천막 안에는 택배 상자 1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송장이 바래질 정도로 오래된 택배 상자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배송된 고등어나 감자 등을 비롯해 소금자루까지 택배로 쌓여 있었다. 아파트 주민 40대 B씨는 "단지 주민들이 많이 불편해한다"며 "앞으로 더워질 텐데 혹시라도 음식 같은 배송품은 상하는 등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다"라고 했다.
택배 업무를 정상적으로 마쳐야 하는 택배 기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단지 내에서 만난 일양택배 택배기사 C씨는 "이 아파트 몇몇 단지만 현수막 쳐진 곳에 택배를 두기로 협의했다"며 "아파트 단지 지상에 아예 못 들어가고 차도 못 대니 배송 업무가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천막에서 찾아가세요" vs "저상 차량 구매하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택배 대란' 문제가 불거진 단지는 금광동에 위치한 'e편한세상금빛그랑메종'(2329가구)이다. 대단지인데다 입주한 지 불과 1년도 채 안 된 곳이다. 총 6개 단지(임대 단지 포함)로 이뤄져 있는데 택배 대란이 불거진 곳은 1, 4, 5단지다.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이른바 '공원형 아파트'다 보니 택배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게 문제가 됐다. 지난달 1일부터 소방차, 구급차 등 긴급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은 단지 지상 통행이 금지됐다. 주민 찬반투표로 결정됐다. 입주민들이 위험하단 이유에서다.
택배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차량 높이는 2.5m인데 주차장 층고는 2.1m로 낮기 때문이다. 신축 아파트지만 2018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 국토교통부의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와 택배사는 이번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입대의는 택배사가 저상 차량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입대의 측은 단지 내 현수막 게재를 통해 "올해 6월 1일부터 택배차량은 보행자 도로로 진입을 금지한다"며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택배 차량은 지하주차장으로 출입 가능한 저상형 차량으로 조치 바란다"고 덧붙였다.
반면 택배사는 '등·하교 시간을 피할 테니 지상에 택배차를 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택배사 관계자는 "저상 차량 이용은 비용이 많이 들고 택배기사들의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며 "현재 2, 3단지는 지상에 택배 차량 대는 것을 허용했으나 1, 4, 5단지에서 협의를 안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택배 대란' 문제, 이번엔?
'e편한세상금빛그랑메종' 택배 문제의 핵심은 '저상형 차량'이다. 주민들은 저상차량 도입을 권유하고 있지만, 택배 노조는 저상 차량 도입에 무리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기존 차량을 저상 탑차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100만~200만원이 들어간다. 저상 차량을 이용해 배송할 경우 택배기사들이 탑차 안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작업을 해야 하고 물건을 싣고 내릴 때도 배송 기사의 손목, 발목 등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한선범 택배 노조 정책국장은 "몇몇 단지에서 지상에 택배 차량을 잠깐 대는 것도 허용을 안 해주기에 이 사태가 났다"며 "과도한 택배 서비스 요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마련된 해결책은 없다"고 전했다.
택배를 제대로 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건 입주민들이다. 그렇다 보니 입주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시적으로 지상 주차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아무리 그래도 지상 주차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택배 갈등은 새 아파트마다 불거지는 문제가 됐다. 앞서 2021년 5000가구에 육박하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 단지 내에서도 '택배 갑질' 사건이 일어났다. 이 아파트 입구와 경비실 앞에 택배 상자 1000여 개가 놓인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해당 사건이 불거졌다. 이후 2년이 지난 최근 택배사 측은 어쩔 수 없이 저상 차량으로 교체했다. 단지 자체에선 택배 기사 인력을 로봇으로 교체하는 방안도 강구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힐스테이트푸르지오수원'(2586가구)에서도 아파트 정문 앞에 택배 물품이 쌓여 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택배 대란은 한 달이 넘도록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강근식 강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택배 대란 문제를 두고 "처음 아파트 설계부터 잘못된 사례"라며 "공원형 신축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높이를 늘리거나 지상 택배 차량 주차 공간을 두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성남)=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