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설이 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소심이의 참견
여름 휴가지로 제주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짝이는 에머랄드 빛 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어디 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해안도로, 신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아기자기한 섬, 창문을 열면 그 시원한 초록내음까지 손에 잡힐 것 같은 내륙의 중산간도로 그리고 한라산까지. 제주에서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되고 에세이스트가 된다.
육지를 떠나 섬으로 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설렘을 준다. 연결이 아닌 단절과 고립, 다름…. 그래서 조금은 외롭지만 독창적이고 고유하고 독특한 매력이 섬에는 있다.
그래서인지 제주는 자주 소설의 무대가 된다. 때로는 그 멋진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때로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기에 겪어야 했던 치열한 삶의 이야기 속에 있기도 하다. 올 여름 제주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소설이 된 제주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허태연 작가의 <하쿠다 사진관>. 제목만 보면 혹시 일본 소설인가 싶지만 ‘하쿠다’는 ‘하겠습니다’라는 뜻의 제주말로, 원하는 어떤 사진도 찍어준다는 의지를 담은 사진관의 상호이자 소설의 제목이다. 한번 잡으면 술술 읽히는 편안한 소설이다.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그 따스함에 미소를 짓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 막연하게 상상해봤을 제주 정착기 같은 현실감과 평범함 때문인 듯하다.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오는 등장인물들은 신혼시절의 나, 아이를 낳고 아빠 엄마가 된 우리, 이제 50이 되어 친구들이 점점 더 소중해진 지금의 내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닮아있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휴대폰을 분실하면서 제주에 머물게 된 주인공 ‘제비’. 사진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하쿠다 사진관에서 일하게 된다. 제비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을의 큰 행사인 ‘대왕물꾸럭마을’의 오랜 전통을 잇는 사자로 선택되면서 마을의 구성원으로 스며든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제주에 여행 간다면 꼭 현지 사진관에서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운이 좋다면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진관 주인장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주 헌책방인 ‘구들책방’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소설이 있다. <검은모래>.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척박한 삶을 그린 영화와 소설이 많지만 해녀들 역시 강제노역에 예외가 아니었음을 새삼 알게 해준 소설이라 더욱 특별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경험” 이라는 구소은 작가의 말처럼 <검은모래>는 소설적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전개되면서 사실적인 감동과 동시에 그 이면에 그 시절을 살았던 제주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의 제목인 ‘검은모래’는 제주 동쪽 섬 우도에 위치한 조일리라는 마을의 검멀레(검은모래) 해안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곳에서 여주인공 해금의 어머니인 구월(9월에 태어나 붙여진 이름)은 태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나라는 없었고, 잠녀(해녀)로의 삶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딸 해금과 아들 기영 그리고 외손자인 건일과 외증손녀인 미유의 4대로 이어지는 가족사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들과 분단과 민족차별이라는 이념적 갈등 속을 지겹도록 고단하게 관통한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물길로 이어진 제주와 일본을 오가는 해녀들의 치열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성장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정겨운 소설 <복자에게>(김금희 직가)도 따뜻하다. 집이 완전히 망해버려 어쩔 수 없이 제주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의 고모에게 맡겨진 주인공 이영초롱. 아무런 기대도 없이 섬을 배회하다가 만난 ‘복자’는 주인공의 망해버린 황당한 가족사를 듣고도 진심으로 주인공을 대하게 되고 둘은 단짝 친구가 된다. 하지만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들의 갈등에 휘말리면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주인공 영초롱이 서울로 가게 되면서 결국 그 관계마저 끊기고 만다.
어른이 되어 판사가 된 이영초롱은 법정에서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제주법원으로 징계성 인사발령을 받게 되고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복자를 만나 재회하며, 법적 대리자로 소송에 뛰어든다. 복자의 투쟁은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산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판사블랙리스트, 국정농단 사건, 제주 4·3사건 등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선택한다면 한 가지 수고로움을 덜어주려 한다. 아름다운 섬 속의 섬 ‘고고리섬’은 작가의 제주에의 시간을 투영해 만들어낸 상상의 섬이다. 굳이 검색해보지 않으셔도 된다.
반짝이는 에머랄드 빛 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어디 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해안도로, 신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아기자기한 섬, 창문을 열면 그 시원한 초록내음까지 손에 잡힐 것 같은 내륙의 중산간도로 그리고 한라산까지. 제주에서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되고 에세이스트가 된다.
육지를 떠나 섬으로 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설렘을 준다. 연결이 아닌 단절과 고립, 다름…. 그래서 조금은 외롭지만 독창적이고 고유하고 독특한 매력이 섬에는 있다.
그래서인지 제주는 자주 소설의 무대가 된다. 때로는 그 멋진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때로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기에 겪어야 했던 치열한 삶의 이야기 속에 있기도 하다. 올 여름 제주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소설이 된 제주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허태연 작가의 <하쿠다 사진관>. 제목만 보면 혹시 일본 소설인가 싶지만 ‘하쿠다’는 ‘하겠습니다’라는 뜻의 제주말로, 원하는 어떤 사진도 찍어준다는 의지를 담은 사진관의 상호이자 소설의 제목이다. 한번 잡으면 술술 읽히는 편안한 소설이다.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그 따스함에 미소를 짓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 막연하게 상상해봤을 제주 정착기 같은 현실감과 평범함 때문인 듯하다.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오는 등장인물들은 신혼시절의 나, 아이를 낳고 아빠 엄마가 된 우리, 이제 50이 되어 친구들이 점점 더 소중해진 지금의 내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닮아있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휴대폰을 분실하면서 제주에 머물게 된 주인공 ‘제비’. 사진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하쿠다 사진관에서 일하게 된다. 제비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을의 큰 행사인 ‘대왕물꾸럭마을’의 오랜 전통을 잇는 사자로 선택되면서 마을의 구성원으로 스며든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제주에 여행 간다면 꼭 현지 사진관에서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운이 좋다면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진관 주인장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주 헌책방인 ‘구들책방’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소설이 있다. <검은모래>.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척박한 삶을 그린 영화와 소설이 많지만 해녀들 역시 강제노역에 예외가 아니었음을 새삼 알게 해준 소설이라 더욱 특별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경험” 이라는 구소은 작가의 말처럼 <검은모래>는 소설적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전개되면서 사실적인 감동과 동시에 그 이면에 그 시절을 살았던 제주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의 제목인 ‘검은모래’는 제주 동쪽 섬 우도에 위치한 조일리라는 마을의 검멀레(검은모래) 해안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곳에서 여주인공 해금의 어머니인 구월(9월에 태어나 붙여진 이름)은 태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나라는 없었고, 잠녀(해녀)로의 삶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딸 해금과 아들 기영 그리고 외손자인 건일과 외증손녀인 미유의 4대로 이어지는 가족사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들과 분단과 민족차별이라는 이념적 갈등 속을 지겹도록 고단하게 관통한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물길로 이어진 제주와 일본을 오가는 해녀들의 치열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성장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정겨운 소설 <복자에게>(김금희 직가)도 따뜻하다. 집이 완전히 망해버려 어쩔 수 없이 제주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의 고모에게 맡겨진 주인공 이영초롱. 아무런 기대도 없이 섬을 배회하다가 만난 ‘복자’는 주인공의 망해버린 황당한 가족사를 듣고도 진심으로 주인공을 대하게 되고 둘은 단짝 친구가 된다. 하지만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들의 갈등에 휘말리면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주인공 영초롱이 서울로 가게 되면서 결국 그 관계마저 끊기고 만다.
어른이 되어 판사가 된 이영초롱은 법정에서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제주법원으로 징계성 인사발령을 받게 되고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복자를 만나 재회하며, 법적 대리자로 소송에 뛰어든다. 복자의 투쟁은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산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판사블랙리스트, 국정농단 사건, 제주 4·3사건 등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선택한다면 한 가지 수고로움을 덜어주려 한다. 아름다운 섬 속의 섬 ‘고고리섬’은 작가의 제주에의 시간을 투영해 만들어낸 상상의 섬이다. 굳이 검색해보지 않으셔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