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진화와 산림경영에 꼭 필요한 임도가 개설된 전남 장성 축령산 치유의 숲 모습. /산림청 제공
산불진화와 산림경영에 꼭 필요한 임도가 개설된 전남 장성 축령산 치유의 숲 모습. /산림청 제공
지난 3월 8일 경남 합천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기 강한 바람이 불어 급속히 확산했지만, 야간에 임도를 통해 인력이 들어가 밤샘 진화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일몰 시 10%에 불과하던 진화율을 다음 날 오전 5시에 92%까지 끌어올려 조기 진화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달 11일 경남 하동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도가 없어 인력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밤이 깊어지면서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 오후 10시 30분 진화인력이 모두 철수해야만 했다. 진화 당국은 다음 날 아침까지 산불이 타들어 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산림청은 애써 가꾼 산림이 산불로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인명과 주택 등 피해도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산불 진화 임도를 본격적으로 확충하기로 했다. 산림청이 산불방지임도 확충에 나선 것은 지난해와 올해 대형산불을 겪으면서 산불 진화에는 임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산불이 났을 때 임도가 있는 경우에는 진화인력과 장비가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조기 진화할 수 있었지만, 임도가 없는 지역은 인력 진입이 어려워 그만큼 산불 진화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산림청은 올해 공유림과 사유림에 처음으로 산불 진화 임도를 지원(국비 70%)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332㎞에 불과한 산불 진화 임도를 매년 500㎞ 이상씩 늘려 2027년까지 3207㎞를 확충할 계획이다.

산불 진화를 목적으로 설치한 산불 진화 임도는 그동안 국유림에만 332㎞가 설치됐었다. 공유림과 사유림은 올해 처음으로 일부 지역에 설치한다. 산불 진화 임도는 일반 임도(도로폭 3m)보다 도로 폭(3.5m 이상)이 넓게 설치될 예정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지난해 울진 서구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에 산불이 났을 때 2020년에 설치한 산불 진화임도 덕분에 200∼500년 된 금강소나무 8만 5000여 그루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산림 629만㏊에 설치된 임도는 지난해 말 기준 총 연장거리 2만4929㎞에 이르지만, 임도밀도를 보면 3.97m/㏊로 산림 선진국인 독일(54m/㏊)의 1/14, 일본(23.5m/㏊)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이 중 국유림 임도밀도가 4.98m/㏊, 공유림과 사유림 임도밀도는 3.6m/㏊로, 전체 산림의 74%를 차지하는 공·사유림의 임도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또 임도 설치에 여러 제약이 따르는 국립공원 지역의 임도밀도는 0.16m/㏊로 더 열악하다. 임도는 산림경영을 위해 산림 안에 설치하는 도로이지만 최근에는 산불 진화, 산사태 예방, 산림병해충 방제 등 재난 대응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휴양, 레포츠를 즐기는 공간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임도는 산불 발생 초기, 발화지점에 진화인력과 차량이 신속하게 접근해 대형산불로 확대되기 전에 초동 및 야간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미국 내 대형산불이 발생한 국유림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임도의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연료의 연속성이 높아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산불의 피해 규모와 임도의 상호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임도로부터 거리가 1m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이 1.55㎡씩 증가한다고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와 산림 여건이 유사(국토의 60%가 산림, 침엽수림이 약 50%)한 핀란드는 약 13만㎞ 이상의 임도 개설로 진화인력 및 장비의 접근성을 향상하고 있다. 그 결과 산불 피해 면적을 0.4㏊/건으로 감소시켰다. 미국과 일본 역시 임도를 활용한 산불관리전략을 수립해 산불 진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임도는 산림 경영에도 도움을 준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임도를 확충하면 이용 가능 산림면적이 약 5~8배 증가한다. 임도밀도가 10m/㏊에서 20m/㏊로 높아지면 기계화 목재생산을 통해 집재비의 약 35~47%가 절감돼 산림자원 순환경영에 기여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산림청이 지난 5월 실시한 2023년 산림에 관한 국민 의식조사에서도 산불 진화 등에 활용되는 임도를 더 개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68.8%에 달하기도 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불을 공중과 지상에서 입체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산불을 끄기 위한 인력이 진입할 수 있는 산불 진화임도 확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임도 예산을 대폭 확충하고 임도 시설이 취약한 국립공원 등에도 적극적으로 임도를 개설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