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팹리스 유니콘인 파두가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공모가 상단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1조4898억원. 파두는 지난 6년간 총 413만주의 임직원 스톡옵션을 부여했습니다. 최근 프리IPO 때는 3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직원 보상을 실시했습니다. 파두의 공동창업자인 이지효 대표가 밝힌 파두의 직원 성과 보상 방침과 K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대한 생각을 한경 긱스(Geeks)가 전합니다.
'IPO 대어' 파두, 직원 성과급으로 300억 쏜 이유는 [긱스플러스]
프리IPO 때 직원대상 300억 보상…413만주 스톡옵션 지급
초기 멤버 30명 중 단 1명만 이탈한 비결
"정부가 한국 업체들 줄줄이 엮는 생태계 구축 방식 안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습니다. 글로벌적으로 새로운 반도체가 필요하고 한국엔 역량있는 엔지니어들이 존재합니다. 여러 영역에서 '조단위' 반도체 회사들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겁니다."

이지효 파두 대표가 지난달 열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 스타트업생태계컨퍼런스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최근 300억원에 가까운 직원 성과보상을 실시한 사실과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던 이유를 밝혔다. 이 대표는 "파두는 한국 최초의 2세대 팹리스다. 국내 1세대 팹리스는 싸게 만들어서 대량 공급하는 데 초점을 뒀고, 국내 시장에서 2000억,3000억 짜리 회사를 만드는 정도가 끝이었다. 파두는 다르다. 한국 엔지니어들의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지효 파두 대표.
이지효 파두 대표.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파두는 지난 2월 약 120억원 규모의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IPO) 유치에서 약 1조8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달 30일엔 코스닥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희망 공모가는 2만6000~3만1000원으로 제시했다. 공모가 상단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1조4898억원. 프리IPO 때 인정받았던 기업가치보다 38%가량 늘려 잡았다. 2016년 첫 투자를 받았을 때 기업가치가 540억원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7년 만에 30배 가까이 뛴 것이다.

주력 제품은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SSD컨트롤러다. SSD는 데이터센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 중 하나로, SSD컨트롤러는 이를 제어하는 두뇌에 해당한다.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에 제품을 공급한다. 전체 직원 230명 중 210명이 엔지니어다. 이 대표는 "실력있는 한국 엔지니어들의 역량으로 만든 제품을 글로벌에서 인정받고, 또 그 성과를 바탕으로 엔지니어들에게 제대로 된 경제적 보상을 하는 선순환을 구축해 글로벌 팹리스가 되는 게 목표"고 했다.

파두가 300억 성과급 쏜 이유

이 대표는 파두의 시작이 경쟁력 있는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보한 시점이라고 했다. "AI 발전으로 반도체가 굉장히 중요해진 상황에서 실력 좋은 친구들이 한국에 많다고 봤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반도체 역량을 충분히 쌓아왔고요."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사업을 해볼 수 있을까 했던 게 회사를 시작한 계기였다."그 전엔 한국이 팹리스 판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는데 이 막대하게 큰 시장에 뛰어들만한 상황이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성과급 명목으로 스톡옵션을 지급했다. 2018년부터 주당 100원에 약 110만주의 스톡옵션을 임직원 18명에게 지급했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4500원. 7100원에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100만주씩 나눠줬다. "최근에 프리IPO 들어갈 때 직원 대상으로 300억원 가까운 보상을 했습니다. 한국의 스타트업 중 가장 직원 보상에 신경쓰는 회사일 거예요. 2015년에 창업했는데 초기 멤버 30명 중 나간 사람이 딱 한명뿐입니다."

이 대표는 파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 가치가 한국의 엔지니어들을 글로벌에서 인정받게 하는 점이라고 했다. "직원 중 직전 회사에서 몇천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계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희는 1억 연봉 수준에서 회사로 모셨고 그 분과 함께 미국 빅테크 고객과 미팅을 했는데 미팅이 끝난 뒤 미국 엔지니어들이 오더니 '이런 인재는 어디서 찾았냐'고 하더라고요. 바로 연봉을 2배 넘게 올려드렸고 지금은 저희 회사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고 계십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 반도체 엔지니어들도 속속 합류했다. "처음엔 대기업에서 오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CTO가 좋아하는 게 작년부터 삼성과 하이닉스에서도 저희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어요. 글로벌에서 성과가 나는 제품을 받아 인정받고 거기에 맞춰서 보상을 하니까 좋은 엔지니어들이 합류하는 선순환이 구축된 겁니다."

한국 스타트업은 메타를 어떻게 뚫었나

어떻게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이 글로벌 빅테크인 메타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을까. 2018년 첫 제품을 개발했을 때만 하더라도 시장의 관심은 낮았다. "제품을 스펙 좋게 잘 개발해놨으니 이제 팔기만 하면 대박이 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업들이 어디서 온지도 모르겠는 놈이 만든, 겉으로 보이는 그럴듯한 스펙만 있는 걸 아무도 쓰려고 안 했던 거죠. 그래서 물건을 제대로 못 팔았습니다."
'IPO 대어' 파두, 직원 성과급으로 300억 쏜 이유는 [긱스플러스]
창업 초기엔 처음엔 미국 행사에 가서 이메일리스트를 산 다음 400곳에 콜드메일을 뿌렸다. 그중에서 답장이 3개 왔다. 답장 온 비율이 1%도 안됐다. 답장 온 3개 메일 중엔 '말은 누가 못하냐. 실물 가져와라'는 내용도 있었다. 한국 스타트업을 제대로 믿지 않았던 셈이다. 제품만 잘 개발하면 시장에서 알아봐줄 것이란 안일한 기대가 산산히 깨졌다.

아예 완제품을 만들어서 보여주자고 판단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다 완제품 샘플을 나눠줬다. 그중 관심을 보였던 게 애플 데이터센터 엔지니어들이었다. 애플 엔지니어가 '괜찮은 제품'이라고 메타에 추천하면서 메타가 뚫렸다. 메타가 뚫리면서 다른 미국의 테크회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하드웨어 B2B판이 심플하다. 제품이 기존에 있는 것보다 더 좋거나 더 싸면 쓰는 거다. 이제 미국 테크업계에서 파두라는 이름은 다 알려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제품 공급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사실 앞단은 오히려 사람도 적게 필요하고 돈이 별로 많이 안 들어요. 칩 하나 찍는 데 50억원에서 100억원 들어가냐고 얘기를 하시는데, 사실 그 뒤에 더 무시무시한 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메타에 공급하려고 하면 제품 잘 만들어서 좋은 거 보여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실제로 제품 3000개를 찍어서 그걸 6개월 이상 돌려가지고 품질을 확인해야해요. 한국 팹리스 중에 이제 막 제품 개발해서 여러가지로 자랑하고 계시는 회사들이 있는데, 사실 제품 만드는 건 쉽습니다. 문제는 이걸 가지고 고객을 설득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양산 품질을 만들 수 있느냐입니다."

"한국 업체들 줄줄이 엮는 K생태계 구축 안돼"

파두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 그중 가장 혁신의 선봉에 있는 미국 시장을 노렸다. 한국 시장 먼저 공략하고 글로벌로 가는 전략이 아니라 처음부터 미국으로 나간 것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혁신이 한발 늦어요. 글로벌 시장을 뚫어보자고 하면 한국 회사들로부터 먼저 인정받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 썼다고 해서 애플이 써줄 것도 아니니까요. 미국 테크기업들은 엄청나게 큰 데이터센터를 전용으로 만들다보니까 그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전용으로 만들거든요. 명확하게 원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들어가는 게 필요한데 우리나라 업체들은 아직 그 시스템까진 못 갔습니다."
'IPO 대어' 파두, 직원 성과급으로 300억 쏜 이유는 [긱스플러스]
파두는 파운드리는 대만 회사인 TSMC와 협업하고, 디자인하우스도 미국 업체와 계약했다. 그는 "저희가 파트너를 고른다면 글로벌에서 제일 좋은 곳과 함께 하고싶지 한국 업체라서 하고 싶진 않습니다. 팹리스, 파운드리, 디자인하우스를 모두 한국 회사로 묶는다는 게 사실 의미가 없어요. 저는 정부가 한국업체들을 데려다가 엮어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파운드리는 일단 삼성을 쓰고 디자인하우스, 팹리스 다 한국업체를 붙이는 방식은 아니라고 보고, 각자 글로벌에서 말이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생긴다면 자동으로 해결되는 문제라고 봅니다. 각 업체들이 글로벌에서 혁신을 이룬 다음 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쓰면서 또 다른 혁신을 만드는 순서로 가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인공스럽게 조합하는 건 답이 아니죠."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각 영역에서 '조단위' 회사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왔다고 했다. "B2C는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가 각자 다 다른데 B2B는 기준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품이 좋으면 쓰는 겁니다. 변방에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글로벌 B2B 하드웨어 시장이 오히려 뚫기 쉬운 시장일 수도 있어요."

다만 제품 개발 역량과는 별개의 비즈니스 역량이 중요하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회사들을 만나 보면 엔지니어들만 모여 있는 게 문제예요. 다시 말하면 자기들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지, 만들어야하는 제품을 안 만듭니다. 반드시 비즈니스적인 부분이 붙어서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이 반도체 쪽에선 '슈퍼 파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