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굵직한 사회적 대화 참여 … 노사발전재단선 ‘경영인’ 경험
‘파업조장법’ 저지 총력 “모호한 사용자 개념 혼란 부추겨”
지난해 4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명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관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보수로 분류되는 정권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인물이 장관에 임명됐다는 사실이 이런 반응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당시 당선인)은 이정식 장관 후보자를 두고 “노동현장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합리적 노사관계가 정립되는 밑그림을 그려낼 적임자”라고 말했다. 보수로 분류되는 주요 언론들조차 ‘기대가 크다’는 평가를 쏟아냈다. 그의 과거 이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브레인
서울대 경제학과→한국노총 정책연구위원, 대외협력본부장→건설교통부 정책보좌관→고용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한국노총 사무처장→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고용부 장관. 이 장관의 이력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첫 직장으로 한국노총을 선택한 파격은 물론 노동계뿐 아니라 정부의 다양한 요직을 넘나든 경력이 눈에 띈다.충북 제천의 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닐 정도로 순박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입학 후 1987년 민주화 체제로 가는 격동의 시기를 직접 겪으며 삶이 180도 달라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커다란 혜택이라고 생각한 그는 진로를 ‘사회 운동’으로 결정했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에서 정책연구와 대외협력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다 보니 현장 투쟁보다는 현행 노동 법률 및 제도 개선 연구를 도맡아 정책 분야에 강점이 있었다. 한국노총을 대표해 외부 토론에도 자주 나갔다. 같은 한국노총 출신이자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임이자 위원은 그를 “한국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 노동계의 브레인”이라고 평한다.


노동계 첫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정책 전문가 출신이다 보니 공직을 두루 경험할 기회도 있었다. 2004년 11월 노무현 정부에서는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발탁돼 공직을 시작했다. 건설교통 분야의 노사 문제를 사전 대응한다는 차원에서였다.2007년부터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아 2010년까지 근무했다. 상임위원 시절에도 그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중재활동으로 노사의 파국을 막았다. 준상근 조정위원을 활용해 사전예방 성격의 조정활동을 강화했고, 화해 제도를 활성화했다.

2017년 노동계 인사로서는 최초로 노사발전재단의 기관장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정부 관료 출신이 재단 사무총장을 맡던 관행을 깬 인사여서 주목받았다. 여러 단체가 한데 묶여 조직된 노사발전재단 특성상 노동단체, 사용단체 등 서로 다른 출신의 인력 불협화음은 오랜 문제였다. 이 장관은 ‘용광로 문화’ 구축을 강조하며 재단의 인사, 조직, 사업을 전면 개편하면서 조직과 인사, 사업을 총괄하는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대우조선해양 ‘옥쇄 투쟁’ 설득
이 장관은 2022년 4월 14일 고용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수많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며 합의를 이끌어낸 경험, 노동계뿐만 아니라 공무원, 경영인으로서 두루 걸쳐 온 이력이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다.이 장관의 이런 경력은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의 경남 거제 조선소 도크를 점령하는 등 파업 사태가 악화하자 사건이 벌어진 거제로 달려갔다. 일정을 마치고 상경한 이 장관은 다음날에도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간다는 소식을 듣자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틀 연속 거제를 방문했다. 이 장관이 직접 ‘옥쇄 투쟁’을 선택한 하청 노조 간부와 대면 대화를 나눠 설득에 나섰고,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 장관은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국민의 필요가 아닌, 일부 제도에 대한 노사의 주고받기식 임시방편 처방’에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불법·부당을 서로 눈감아 주고, 이를 바로잡는 책무를 방기하는 등의 의식·관행이 형성되면서 노동법과 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저하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윈윈메이커답게 합리적인 대화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어두고 있다. 지금도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질 땐 노동계 선후배들을 만나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할 것"
이 장관이 임기 중 겪었던 아쉬운 정책은 특정 주에는 일을 몰아서 하고, 특정 주에는 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다. 개편안이 설계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개편안에 담긴 철학을 국민에게 잘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이 장관이 느끼는 아쉬움의 원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주 4일제를 꺼내들어 상당한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특정 일에 추가 근무를 적립할 경우 하루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제도로, 근로시간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기본적인 제도의 골격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일치하지만, 평가는 정반대인 상황이다. 고용부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장관은 대규모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에게 오해를 사지 않고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개편안을 준비 중이다.이 장관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에서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넓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노조법이 시행될 경우 2차, 3차 하청 업체 노조까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를 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 장관은 또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그는 사석에서도 수차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현대판 반상제도이자 노동시장을 좀먹는 가장 위험한 질병”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대기업·정규직 노조 위주로 구성된 기존 노동운동단체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의 다음 행보는 ‘직무’와 ‘성과’에 따라 근로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