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앞장선 노동운동계 전설 … 노동개혁 선봉에 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대 졸업 후 첫 직장 한국노총 … 투쟁보다 ‘정책 설계’
굵직한 사회적 대화 참여 … 노사발전재단선 ‘경영인’ 경험
‘파업조장법’ 저지 총력 “모호한 사용자 개념 혼란 부추겨”
충북 제천의 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닐 정도로 순박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입학 후 1987년 민주화 체제로 가는 격동의 시기를 직접 겪으며 삶이 180도 달라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커다란 혜택이라고 생각한 그는 진로를 ‘사회 운동’으로 결정했다. 사회 운동에 뜻이 있는 학생들도 공장 위장 취업, 농촌 활동을 잠깐 거쳐가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 장관은 바로 한국노총을 선택했다. 전국 규모의 노동조합으로 성장하고 있던 한국노총의 역할이 노동운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장관은 1986년 한국노총의 연구위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에서 정책연구와 대외협력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다 보니 현장 투쟁보다는 현행 노동 법률 및 제도 개선 연구를 도맡아 정책 분야에 강점이 있었다. 한국노총을 대표해 외부 토론에도 자주 나갔다. 같은 한국노총 출신이자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임이자 위원은 그를 “한국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 노동계의 브레인”이라고 평한다. 이 장관은 최저임금, 고용보험 제도, 주 5일제 등 굵직한 노동제도들이 도입되는 과정에 모두 참여해 의견을 냈다. 최저임금위원회에는 근로자위원으로 장기간 참여했고, 고용보험 제도 도입과 주 5일제 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노총 재임 기간 열린 사회적 대화에는 거의 전부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부터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문위원, 1998년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해 2월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 도출에 공헌했다. 이 장관이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는 성과는 ‘주 5일제’ 도입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신인 노사정위원회 산하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에 참여(2000~2001년)해 주 5일제 도입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임금 감소를 이유로 노동계 내부에서도 주 5일제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는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임금은 곧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등의 근거를 제시하며 반대자들을 설득했다.
2007년부터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아 2010년까지 근무했다. 상임위원 시절에도 그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중재활동으로 노사의 파국을 막았다. 준상근 조정위원을 활용해 사전예방 성격의 조정활동을 강화했고, 화해 제도를 활성화했다. 이 장관은 2011년 한국노총으로 다시 복귀했다. 당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하루에 몇 통씩 문자를 보내는 등 끈질기게 복귀를 설득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2011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문화선진화위원회 위원,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했고, 2015년 9월에는 한국노총 사무처장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17년 노동계 인사로서는 최초로 노사발전재단의 기관장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정부 관료 출신이 재단 사무총장을 맡던 관행을 깬 인사여서 주목받았다. 여러 단체가 한데 묶여 조직된 노사발전재단 특성상 노동단체, 사용단체 등 서로 다른 출신의 인력 불협화음은 오랜 문제였다. 이 장관은 ‘용광로 문화’ 구축을 강조하며 재단의 인사, 조직, 사업을 전면 개편하면서 조직과 인사, 사업을 총괄하는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이 장관의 독보적인 경험과 전문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이 장관은 자신의 이메일 아이디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아임포레이버(im4labor)와 윈윈메이커(winwinmaker)가 그것이다. 이 장관은 사석에서 “사회적 대화가 지속되는 한 사회가 계속 진보한다”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더디더라도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납득시키는 상생의 문화가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게 그의 평생 신념이다.
이 장관의 이런 경력은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의 경남 거제 조선소 도크를 점령하는 등 파업 사태가 악화하자 사건이 벌어진 거제로 달려갔다. 일정을 마치고 상경한 이 장관은 다음날에도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간다는 소식을 듣자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틀 연속 거제를 방문했다. 이 장관이 직접 ‘옥쇄 투쟁’을 선택한 하청 노조 간부와 대면 대화를 나눠 설득에 나섰고,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마무리됐다. 노동개혁에 대한 이 장관의 신념은 경험에서 비롯한다. 30여 년을 노동계에 몸담았던 만큼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구조적 모순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법과 상식을 경시하는 노동시장의 불법·부당한 관행이 반칙·특권을 통한 지대추구로 이어져 노동시장의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이런 노동시장에서라면 미래 세대가 소위 ‘독박’을 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다.
이 장관은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국민의 필요가 아닌, 일부 제도에 대한 노사의 주고받기식 임시방편 처방’에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불법·부당을 서로 눈감아 주고, 이를 바로잡는 책무를 방기하는 등의 의식·관행이 형성되면서 노동법과 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저하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정부는 노사 법치를 내세우고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확보 정책을 시작으로 고용세습 조항 철퇴, 노조 국고 보조금 지원 사업 등을 줄줄이 도마에 올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물론 자신의 ‘친정’인 한국노총과도 각을 세우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지만, 이 장관의 행보는 최근 더욱 거침없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장관은 노사 법치가 ‘노동계 탄압’이라는 노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 “법을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고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게 탄압이냐” “노동조합은 헌법을 통해 보장된 노동3권으로 존립할 수 있는 기관으로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한다. 법을 우습게 여기는 관행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윈윈메이커답게 합리적인 대화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어두고 있다. 지금도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질 땐 노동계 선후배들을 만나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장관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에서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넓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노조법이 시행될 경우 2차, 3차 하청 업체 노조까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를 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는 “모호한 개념으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안은 산업 현장의 극심한 혼란과 갈등, 법률 분쟁을 폭증시킬 것”이라며 “노사 관계와 경제 전반, 국민 일상의 삶에 막중한 영향을 끼치게 될 법안이 그 파장과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987년 이후 합리적 노사관계를 위해 지난 수십 년간 기울여온 노사정의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반시대적 법안”이라고 직격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법안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며 그 길을 위해 걸어온 이 장관의 삶과 대척점에 있다”며 “이 장관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종종 이 법안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며 반드시 중단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그는 사석에서도 수차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현대판 반상제도이자 노동시장을 좀먹는 가장 위험한 질병”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대기업·정규직 노조 위주로 구성된 기존 노동운동단체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의 다음 행보는 ‘직무’와 ‘성과’에 따라 근로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굵직한 사회적 대화 참여 … 노사발전재단선 ‘경영인’ 경험
‘파업조장법’ 저지 총력 “모호한 사용자 개념 혼란 부추겨”
지난해 4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명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관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보수로 분류되는 정권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인물이 장관에 임명됐다는 사실이 이런 반응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당시 당선인)은 이정식 장관 후보자를 두고 “노동현장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합리적 노사관계가 정립되는 밑그림을 그려낼 적임자”라고 말했다. 보수로 분류되는 주요 언론들조차 ‘기대가 크다’는 평가를 쏟아냈다. 그의 과거 이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브레인
서울대 경제학과→한국노총 정책연구위원, 대외협력본부장→건설교통부 정책보좌관→고용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한국노총 사무처장→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고용부 장관. 이 장관의 이력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첫 직장으로 한국노총을 선택한 파격은 물론 노동계뿐 아니라 정부의 다양한 요직을 넘나든 경력이 눈에 띈다.충북 제천의 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닐 정도로 순박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입학 후 1987년 민주화 체제로 가는 격동의 시기를 직접 겪으며 삶이 180도 달라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커다란 혜택이라고 생각한 그는 진로를 ‘사회 운동’으로 결정했다. 사회 운동에 뜻이 있는 학생들도 공장 위장 취업, 농촌 활동을 잠깐 거쳐가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 장관은 바로 한국노총을 선택했다. 전국 규모의 노동조합으로 성장하고 있던 한국노총의 역할이 노동운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장관은 1986년 한국노총의 연구위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에서 정책연구와 대외협력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다 보니 현장 투쟁보다는 현행 노동 법률 및 제도 개선 연구를 도맡아 정책 분야에 강점이 있었다. 한국노총을 대표해 외부 토론에도 자주 나갔다. 같은 한국노총 출신이자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임이자 위원은 그를 “한국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 노동계의 브레인”이라고 평한다. 이 장관은 최저임금, 고용보험 제도, 주 5일제 등 굵직한 노동제도들이 도입되는 과정에 모두 참여해 의견을 냈다. 최저임금위원회에는 근로자위원으로 장기간 참여했고, 고용보험 제도 도입과 주 5일제 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노총 재임 기간 열린 사회적 대화에는 거의 전부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부터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문위원, 1998년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해 2월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 도출에 공헌했다. 이 장관이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는 성과는 ‘주 5일제’ 도입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신인 노사정위원회 산하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에 참여(2000~2001년)해 주 5일제 도입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임금 감소를 이유로 노동계 내부에서도 주 5일제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는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임금은 곧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등의 근거를 제시하며 반대자들을 설득했다.
노동계 첫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정책 전문가 출신이다 보니 공직을 두루 경험할 기회도 있었다. 2004년 11월 노무현 정부에서는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발탁돼 공직을 시작했다. 건설교통 분야의 노사 문제를 사전 대응한다는 차원에서였다.2007년부터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아 2010년까지 근무했다. 상임위원 시절에도 그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중재활동으로 노사의 파국을 막았다. 준상근 조정위원을 활용해 사전예방 성격의 조정활동을 강화했고, 화해 제도를 활성화했다. 이 장관은 2011년 한국노총으로 다시 복귀했다. 당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하루에 몇 통씩 문자를 보내는 등 끈질기게 복귀를 설득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2011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문화선진화위원회 위원,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했고, 2015년 9월에는 한국노총 사무처장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17년 노동계 인사로서는 최초로 노사발전재단의 기관장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정부 관료 출신이 재단 사무총장을 맡던 관행을 깬 인사여서 주목받았다. 여러 단체가 한데 묶여 조직된 노사발전재단 특성상 노동단체, 사용단체 등 서로 다른 출신의 인력 불협화음은 오랜 문제였다. 이 장관은 ‘용광로 문화’ 구축을 강조하며 재단의 인사, 조직, 사업을 전면 개편하면서 조직과 인사, 사업을 총괄하는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이 장관의 독보적인 경험과 전문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이 장관은 자신의 이메일 아이디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아임포레이버(im4labor)와 윈윈메이커(winwinmaker)가 그것이다. 이 장관은 사석에서 “사회적 대화가 지속되는 한 사회가 계속 진보한다”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더디더라도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납득시키는 상생의 문화가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게 그의 평생 신념이다.
대우조선해양 ‘옥쇄 투쟁’ 설득
이 장관은 2022년 4월 14일 고용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수많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며 합의를 이끌어낸 경험, 노동계뿐만 아니라 공무원, 경영인으로서 두루 걸쳐 온 이력이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다.이 장관의 이런 경력은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의 경남 거제 조선소 도크를 점령하는 등 파업 사태가 악화하자 사건이 벌어진 거제로 달려갔다. 일정을 마치고 상경한 이 장관은 다음날에도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간다는 소식을 듣자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틀 연속 거제를 방문했다. 이 장관이 직접 ‘옥쇄 투쟁’을 선택한 하청 노조 간부와 대면 대화를 나눠 설득에 나섰고,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마무리됐다. 노동개혁에 대한 이 장관의 신념은 경험에서 비롯한다. 30여 년을 노동계에 몸담았던 만큼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구조적 모순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법과 상식을 경시하는 노동시장의 불법·부당한 관행이 반칙·특권을 통한 지대추구로 이어져 노동시장의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이런 노동시장에서라면 미래 세대가 소위 ‘독박’을 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다.
이 장관은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국민의 필요가 아닌, 일부 제도에 대한 노사의 주고받기식 임시방편 처방’에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불법·부당을 서로 눈감아 주고, 이를 바로잡는 책무를 방기하는 등의 의식·관행이 형성되면서 노동법과 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저하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정부는 노사 법치를 내세우고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확보 정책을 시작으로 고용세습 조항 철퇴, 노조 국고 보조금 지원 사업 등을 줄줄이 도마에 올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물론 자신의 ‘친정’인 한국노총과도 각을 세우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지만, 이 장관의 행보는 최근 더욱 거침없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장관은 노사 법치가 ‘노동계 탄압’이라는 노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 “법을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고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게 탄압이냐” “노동조합은 헌법을 통해 보장된 노동3권으로 존립할 수 있는 기관으로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한다. 법을 우습게 여기는 관행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윈윈메이커답게 합리적인 대화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어두고 있다. 지금도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질 땐 노동계 선후배들을 만나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할 것"
이 장관이 임기 중 겪었던 아쉬운 정책은 특정 주에는 일을 몰아서 하고, 특정 주에는 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다. 개편안이 설계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개편안에 담긴 철학을 국민에게 잘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이 장관이 느끼는 아쉬움의 원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주 4일제를 꺼내들어 상당한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특정 일에 추가 근무를 적립할 경우 하루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제도로, 근로시간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기본적인 제도의 골격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일치하지만, 평가는 정반대인 상황이다. 고용부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장관은 대규모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에게 오해를 사지 않고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개편안을 준비 중이다.이 장관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에서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넓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노조법이 시행될 경우 2차, 3차 하청 업체 노조까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를 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는 “모호한 개념으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안은 산업 현장의 극심한 혼란과 갈등, 법률 분쟁을 폭증시킬 것”이라며 “노사 관계와 경제 전반, 국민 일상의 삶에 막중한 영향을 끼치게 될 법안이 그 파장과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987년 이후 합리적 노사관계를 위해 지난 수십 년간 기울여온 노사정의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반시대적 법안”이라고 직격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법안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며 그 길을 위해 걸어온 이 장관의 삶과 대척점에 있다”며 “이 장관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종종 이 법안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며 반드시 중단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그는 사석에서도 수차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현대판 반상제도이자 노동시장을 좀먹는 가장 위험한 질병”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대기업·정규직 노조 위주로 구성된 기존 노동운동단체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의 다음 행보는 ‘직무’와 ‘성과’에 따라 근로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