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도 후견인 인정 못 받았다…"부모 재산, 무단 처분 우려"
성년후견 제도, 국내 도입된지 10년
아워홈 경영권 분쟁 속 이슈로 떠올라
정신장애 앓아도 ‘자기결정권’이 중요
성년후견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2013년 7월 민법 개정을 통해 시행된 성년후견 제도는 질병·장애·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인구 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성년후견 제도를 활용하려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지만, 여전히 사전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법원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후견인은 가족이라도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서다.

아워홈 장남이 제기한 母 한정후견 항고 기각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판사 조영호)는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이 모친 이숙희 여사(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녀)를 상대로 제기한 한정후견 개시 항고를 지난달 30일 기각했다. 한정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상태가 인정되는 일부분에 대해 후견인의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다. 본인의 정신이 온전할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후견인으로 지정해두는 임의후견 제도도 있다.
사진=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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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무단으로 처분할 가능성을 고려해 후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 전 부회장 측은 부모에게 치매 증상이 있다며 세 자매(구미현·명진·지은)가 부모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양친 모두에 대해 심판청구를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친에 관한 심판청구는 부친의 사망으로 없었던 일이 됐다.

이번 한정후견 사건은 아워홈의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졌다. 구지은 전 부회장을 포함한 세 자매와 구 전 부회장은 2017년부터 6년간 경영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지난 4월 주주총회에서는 배당금 문제를 놓고 양측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법원 정신 장애 앓아도 피후견인 자발적 의사가 중요

피후견인의 의사와 자기결정권도 법원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부산가정법원은 2016년께 “조현병 등의 정신장애 진단을 받은 모친 A씨의 후견인으로 지정해달라”는 자녀 B씨의 한정후견인 개시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B씨는 A씨의 치료나 건강관리보다는 재산 보존에 주된 관심을 보였다”며 “자신의 필요에 의해 후견제도를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보면 한정후견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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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재산을 직접 관리하려는 뜻을 보인 점도 중요하게 봤다. 재판부는 “A씨가 다소 노쇠하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만 진술서를 작성하고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은 사실 등을 고려하면 일상 사무와 법률행위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상태로 판단된다”고 했다.

日은 재산 유지·관리 아닌 의료·복지 초점

일본의 후견 제도는 크게 스스로 후견을 결정하는 임의후견과 법원이 결정하는 법정후견으로 나뉜다. 둘 중에선 '자신의 결정을 우선 존중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임의후견을 우선 적용하고 있다. 법정후견은 치매의 정도에 따라 후견유형, 보좌유형, 보조유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에 해당한다.

일본은 2006년 12월 유엔 장애인권리 협약에 가입하면서 후견제도를 한층 더 보강했다. 치매 등 정신적 장애를 가진 노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후견제도를 정착화했다. 2010년 10월에는 요코하마에서 성년후견 세계회의까지 열어 성년후견 제도를 행정당국의 공적 시스템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일본은 5년6개월 후인 2016년 4월 성년후견제도이용촉진법을 제정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의 재산관리 강화를 위해 신탁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탁제도는 피후견인의 가족간 분쟁이 있거나 피후견인을 위한 관리가 충분치 않을 경우 제3자인 금융기관이나 법률기관에 재산관리를 맡기는 것을 말한다. 일본 법원은 후견제도 시행으로 친족이 재산을 유용하거나 후견법인을 악용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재산이 일정 규모가 넘으면 신탁을 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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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피후견인의 재산을 유지·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과 달리 일본은 신상보호 중시 원칙을 내세워 피후견인의 재산을 생활·의료·복지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가벼운 정도의 치매·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직업활동에 전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만 후견인의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피후견인의 자율성과 잔존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