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방산, 미국 장갑차사업 탈락…"英美시장 뚫기 힘드네"
보병전투차 4단계 사업 라인메탈 등 선정
미국 발주 무기사업 수십 조 규모 … 경쟁 치열
미국업체와 공동개발·현지생산 노력 필요
독일 라인메탈의 OMFV 가상 이미지.  /레이시온 제공
독일 라인메탈의 OMFV 가상 이미지. /레이시온 제공
미국 육군이 450억 달러(약 54조원)를 들여 M2 브래들리 장갑차를 교체하는 사업인 '선택적 유인전투차량(OMFV)' 프로그램의 중간 입찰 경쟁에서 최근 한국 방산업체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탈락했다. 'K-방산'이 지난해 동유럽 폴란드 수출을 발판으로 신규 사업을 늘리고 있지만, 최고 방산 선진국인 영·미권 사장을 뚫는 것은 만만치 않다는 선례가 생겼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 발주의 무기사업은 수십 조원의 천문학적 규모로 진행돼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방산업체와의 공동개발·현지 생산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GDLS·라인메탈, 美 장갑차사업 최종경쟁 대상에

지난달 말 미 육군은 차세대 보병전투차 사업인 'OMFV 프로그램'의 상세 설계를 위한 3단계와 시제품 제작·시험을 위한 4단계 사업자를 선정했다. 해당 사업자로는 아메리칸 라인메탈(미국 자회사)과 미국 제너럴다이나믹스 랜드시스템(GDLS)이 선정됐다.

이에 따라 미 육군은 라인메탈과 8억1260만 달러 계약을, GDLS와 7억6870만 달러 규모 계약을 우선 체결했다. 미군의 OMFV 프로그램은 미 육군이 운용중인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량을 대체하기 위한 사업이다. 1단계(시장 조사)와 2단계(개념 설계) 사업은 이미 끝났고, 시제품 생산 뒤 평가를 거쳐 2027년께 한 개 업체와 최종 체결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란드 육군서 테스트 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AS-21 '레드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폴란드 육군서 테스트 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AS-21 '레드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OMFV 사업은 기존 3000여대의 브래들리 장갑차를 교체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에 3·4단계에 유수 해외 방산업체들이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GDLS와 라인메탈 외에도 △BAE시스템즈 △블랭크엔터프라이즈 △오시코시디펜스 등이 입찰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미국의 방산업체 오시코시디펜스가 한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했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이번 OMFV 경쟁에서 오시코시디펜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수출용으로 개발한 AS-21 '레드백' 장갑차 기술이 들어간 설계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미 육군은 3·4단계에서 세 개 후보업체를 선발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개 업체만 선정된 점은 의문으로 남았다. 미 육군의 정확한 선정 기준은 알 수 없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술력 문제 보다는 오시코시의 기술 경쟁력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내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오시코시가 군용 트럭 등을 주로 만들던 업체여서 궤도형 차량 제작 경험이 없다"며 "이번 입찰에서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美 입찰 탈락, 호주 장갑차 수주에 영향줄 수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리회사가 아닌 오시코시가 탈락한 것"이란 반응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시장에서 레드백 장갑차 사업 진출을 준비하면서 미국 장갑차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화가 미국 OMFV 수주 경쟁에서 탈락한 반면, 호주에서 경쟁 중인 독일 라인메탈은 최종 후보업체까지 올라가면서 대조가 됐다는 것이다. 방산업계에선 "미국 입찰 탈락이 호주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염려하는 분위기다.
미국 M2 브래들리 보병장갑차.
미국 M2 브래들리 보병장갑차.
미국시장을 뚫기 위해 쟁쟁한 방산업체들과 협력·경쟁 방정식을 짜 맞추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는 분석이다. 아메리칸 라인메탈은 개발했던 신형 장갑차 KF-41 '링스(Lynx)'를 기반으로, 미국의 방산업체인 L3해리스, 텍스트론, 레이시온, 앨리슨 등을 대거 미국모델 개발에 참여시켰다. BAE시스템즈와 GLDS는 각각 기존의 미국 장갑차량(M2브래들리 장갑차, M1에이브럼스 탱크) 공급사여서 오시코시·한화 콘소시엄보다 우위에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른 방산업체 관계자는 "입찰에 참가한 회사 규모나 기술력과 상관없이 미국 사업들은 기존에 거래를 많이 했던 서구권 업체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kAI가 제작한 고등훈련기 T-50 골든이글.  /KAI 제공
kAI가 제작한 고등훈련기 T-50 골든이글. /KAI 제공
K방산이 향후 영·미 등 선진 무기시장에 진출할 때 경쟁업체 전략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국 록히드마틴과 개발한 첫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의 개량 기종에 대해 2026년께 미국 훈련기 교체사업 입찰을 노리고 있다. 이 사업은 사업 규모가 300~500여 대에 달해, 성공시 역대 최대 규모 방산 수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 예고된 영국 육군의 1조원 대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MFP)도 남아 있다.

"美 보호주의 극복해야·대미 전문가 부족"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미국과 유럽의 '보호주의'도 한국이 넘어야 할 벽으로 꼽힌다. 미 국방부는 조달사업에서 ‘미국산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을 적용하고 있다. 이 법은 금액 기준으로 전체 원가의 55% 이상을 미국산 부품비로 채우도록 하는 제도다. 55%를 넘지 않으면 수출원가에 할증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부품비율의 적용 기준을 2024년까지 65%, 2029년까지 75%로 계속 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한미 양국 정상이 합의한 상호국방조달협정(RDP-A) 체결도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방조달협정은 미 국방부가 동맹국·우방국과 체결하는 양해각서다. 체결국은 미군 등에 조달 제품을 수출할 때 세금 등으로 인한 가격상 불이익을 피할 수 있어, '방산 FTA(자유무역협정)'라고도 불린다.

방산업계 내에선 "대미 수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방산업체와 업체(B2B) 간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는 국내업체는 있지만, 미 정부와 무기납품 계약을 체결해 본 국내 업체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보호주의 아래 대규모 무기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미국업체와의 협력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스는 미국 38개주에,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는 18개주에서 공장·사무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방산업체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배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