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패스트의 전기차 모델 VF8. (자료=빈패스트 홈페이지)
빈패스트의 전기차 모델 VF8. (자료=빈패스트 홈페이지)
베트남에서 ‘테슬라 대항마’로 성장해 온 전기차(EV) 제조업체 빈패스트(VinFast)가 이달 뉴욕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Vin)그룹은 이 자회사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지원을 받았던 중국 비야디(BYD)에 맞먹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는 목표다.

"EV 시장 활짝 열려 있어"

르 티 투 투이 빈패스트 최고경영자(FT)는 6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EV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며 “우리는 시장 점유율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EV 시장은 활짝 열려 있다”고 말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이 회사가 오는 20일까지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인 홍콩 기반 블랙스페이드에퀴지션과의 합병을 완료하겠다는 내용의 신고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빈패스트는 SPAC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상장 후 기업가치는 약 270억달러(약 35조원), 지분가치는 약 230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빈패스트는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이 2017년 9월 세운 베트남 최초의 완성차 업체다. 수도 하노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습지 공간에 공장을 세웠고, 2018년 6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하노이 공장을 사들이며 사세를 키웠다. 현재 연간 생산 능력은 25만~30만대에 이른다.
르 티 투 투이 빈패스트 최고경영자(CEO). (자료=포브스)
르 티 투 투이 빈패스트 최고경영자(CEO). (자료=포브스)
빈패스트가 EV 사업에 뛰어든 건 2021년이다. 이 회사는 EV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가솔린차 생산을 과감히 중단했다. 올해 들어서는 캘리포니아주에 13개의 쇼룸(전시 공간)을 꾸며 미국 진출에 나섰다. 지난 3월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투입, EV와 배터리 생산 전용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베트남은 시장 규모도 비교적 작고, 전기차 제조 역사도 짧은 나라다. 그러나 빈패스트는 빈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세를 거듭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GM, 중국 치루이(奇瑞·Chery) 등을 거쳐 빈패스트에서 일하고 있는 브라질 엔지니어인 루이스 구스타보레메스 페레이라는 FT에 “사명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빈패스트의 성장 속도는 지금껏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정도로 빠르다”고 했다.

기술 결함 논란…실적도 큰 폭 악화

다만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미국의 저명 자동차 잡지인 카앤드라이버는 지난해 12월 현지에 처음 선보인 999대의 전기차 모델 ‘VF8’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5월에는 대시보드 화면 관련 기술 결함이 발견되면서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으로부터 리콜 명령을 받기도 했다.
팜 녓 브엉 베트남 빈그룹 회장. (자료=포브스)
팜 녓 브엉 베트남 빈그룹 회장. (자료=포브스)
EV 개발부터 뉴욕증시 상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돼 기업가치를 충분히 검증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월가의 한 관계자는 잠재적 투자자들 사이에서 “빈패스트의 미국 데뷔 속도와 차량 품질과 관련된 우려가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기반 자동차 컨설팅 업체인 시노오토인사이츠의 투러 설립자는 “빈패스트의 ‘프라임타임’(전성기)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며 “경쟁력이 완성되려면 12~18개월의 추가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빈패스트 측은 안전성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대변인은 “차량의 품질과 안전성, 내구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백 대 차량을 동원한 시험을 거쳤고, VF8 모델은 출시 3개월 전 미 연방정부의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했다”며 부실 논란이 “거짓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투이 CEO도 “수천 가지의 시험을 지나오면서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았다”며 “우리의 제품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시중 제품 대비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미 정부의 리콜 조치도 예방 차원에서 자원한 것이란 해명이다.

실적도 부진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 1분기 이 회사는 5억9800만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1분기(4억1100만달러)보다 손실 규모가 커졌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8400만달러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무리하게 제품 판매 가격을 낮추고, 내연차량 판매를 중단한 여파였다.

빈패스트는 애초 지난해 말 뉴욕증시에 데뷔할 계획이었지만, 한 차례 연기했다. 상장 방식도 우회 상장으로 틀었다. 투이 CEO는 “지난 2년간 전통적인 방식의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준비를 끝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IPO 시장이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8~24개월 내로 자본시장이 정상화되면 빈패스트는 자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빈그룹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빈그룹은 이미 상장 준비 과정에서 25억달러 추가 투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뉴욕증시에서 신생 전기차 업체들의 주가는 연일 상승세다. 5일(현지시간) 리비안(4.45%), 니콜라(4.38%)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대장주인 테슬라와 리비안에 이어 니콜라까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내면서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