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1월∼1979년 2월 정치 분야 회담…비밀접촉 과정 담아
이후락, 서울 온 北박성철에 "공산당 잡던 두목이 북한과 마주앉아"
분단후 첫 남북합의, 7·4공동성명 '막전막후 문서' 1700쪽 공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당국간 합의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한 비밀접촉 과정을 보여주는 남북회담 사료가 공개됐다.

통일부는 1971년부터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총 1천678쪽)을 6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사료에는 ▲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비밀접촉(11회, 1971년 11월∼1972년 6월) ▲ 7·4 남북공동성명(1972년 7월) ▲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회의(3회, 1972년 10∼11월) ▲ 남북조절위원회 회의(3회, 1972년 11월∼1973년 6월) ▲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회의(10회, 1973년 12월∼1975년 3월) 진행과정과 회의록 등이 포함됐다.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이뤄진 비밀접촉은 분단 이후 남북 당국 간 최초의 회담으로, 실무자와 고위급의 교환 방문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1972년 3월 정홍진 회담운영부장이 평양을, 다음 달 김덕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지도원이 서울을 각각 방문했다.

그해 5월엔 박정희 정권 '실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회담하고, 김일성 주석과도 두 차례 만났다.

그 달 29일에는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에서 이 부장과 면담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부장은 서울에서 박성철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고위급 비밀접촉 임무에 대해 "어제까지 공산당 잡던 두목이 북한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민족적인 역사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남북은 고위급 비밀접촉에서 합의한 내용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성명 형식으로 동시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 자주 통일 ▲ 평화 통일 ▲ 민족의 단결 도모 등 '조국통일 3대 원칙'이 제시됐다.

분단 후 첫 당국 간 접촉 후 약 8개월 만에 남북통일의 이정표로서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성명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단 살포 등 상호 비방으로 갈등이 심화했고 위원 구성과 의제에 관한 견해차로 남북조절위원회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분단후 첫 남북합의, 7·4공동성명 '막전막후 문서' 1700쪽 공개
이번 남북회담문서 공개는 지난해 두 차례 공개(남북대화 사료집 제2∼6권)에 이어 세 번째다.

이후락·김일성 면담, 박정희·박성철 면담 기록은 공개심의 결과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개된 남북회담문서 원문은 남북회담본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에 마련된 남북회담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자세한 남북회담문서 공개 목록과 열람 절차 등은 남북회담본부 누리집(https://dialogue.unikore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