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감옥에 대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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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공격작전 입안자였던 신영복
'문화콘텐츠·성인군자' 化粧으로
대중의 기억 재건축하는 데 성공
주사파 운동권 신분 세탁도 비슷
그 중심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응준 시인·소설가
'문화콘텐츠·성인군자' 化粧으로
대중의 기억 재건축하는 데 성공
주사파 운동권 신분 세탁도 비슷
그 중심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응준 시인·소설가
책에 대한 비평은 내 천직이다. 한 대학생이 자신의 ‘인생책’으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꼽는 걸 보았다. 그도 전직 대통령 누구와 마찬가지로 신영복을 ‘시대와 사상의 스승’으로 존경한다. 이 ‘익숙한 풍경’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나의 일’을 저버릴 수가 없다.
신영복은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이던 중 1968년 지하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다. 그 수감생활 동안 외부와 나눴던 서신들을 출간한 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이 책에는 통혁당의 실체는커녕 관련 얘기가 거의 없다. 고난 속 한 인간의 에세이, ‘수형서간문학(受刑書簡文學)’으로 분류될 수 있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다양하고 입체적이며 명징한 증거들로 인해 북한은 물론 남한 좌파 계열에서도 반박이 불가능한 공안 사건들 가운데 하나다. 몇 번의 변명과 부인의 시도가 있었으나 제풀에 사그라졌고 이후 오히려 재검증으로 인해 팩트가 널리 퍼질까 봐 그들 스스로 꺼린 것은 그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문화콘텐츠와 성인군자(聖人君子)’로 화장(化粧)을 해 대중의 기억을 재건축하는 방식을 택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나는 인간 신영복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그것을 읽는 대중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혁명가를 인정한다. 체제를 지키는 자와 체제를 파괴하려는 자는 피차 목숨을 걸고 ‘공평한’ 게임(전쟁)을 한다. 신영복은 허접한 간첩이 아니었다. 통일혁명당 무력전술로서 청와대 포격이 담긴 ‘From paper to steel 작전’의 입안자였다. 남조선 혁명가 신영복에게 대한민국은 제거대상이고 장교 신영복은 국군에는 반역자이자 제자들에게 육사교관 신영복은 배신자일 것이다. 혁명가와 군인은 역사 속에서 서로에게 가해자일 뿐이다. 이러하기에, 남한 주사파들이 비전향장기수들은 예수처럼 떠받들지만, 순국군인과 국군포로들 덕에 자유와 풍요를 누리면서도 그들을 증오하는 심정을 나는 백 퍼센트 이해한다.
김일성은 월남 패망 뒤 사이공에 억류된 한국 외교관들과 신영복을 맞교환하려 굉장한 노력을 했더랬다. 그때 그를 북한으로 보냈다면 좋았을 것이다. 통혁당 특수전술교관 후보로 선발돼 1968년 4월 22일 월북했던 이진영은 통일전선부에서 대남 공작 업무에 종사하던 중 김일성 사진을 올려다보고 “저 양반 정말 잘생겼단 말이야”라고 말한 불경죄로 숙청당했다. 북으로 간 신영복이 그런 식으로 몰락하지 않았더라도 삼대세습 사교전체주의왕조(邪敎全體主義王朝) 속에서 금수산 태양궁전(주석궁) 치장에 쓰일 돈으로 동남아산 옥수수를 안 사서 300만이 굶어죽는 걸 직접 경험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박헌영은 알몸으로 머리에 투구만 쓴 채 굶주린 셰퍼드들에게 물어뜯기는 등의 고문을 2년간 당하다가 총살당했다. 북한이 한반도를 통일한다면 지금 남한에 있는 주사파들도 그런 일을 당할 것이다. 월맹은 베트남 통일 뒤 월남 내 좌익세력을 숙청했는데, 명분이, 한 번 반역자는 또 반역한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신영복이 북한에서 혁명하다가 체포됐다면 20년 20일 만에 특별가석방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 죽었을 테니까. 신영복은 넬슨 만델라가 아니고 김지하도 아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나조차 그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가스라이팅은 주사파 운동권들이 1987년을 거치며 민주화운동가로 신분 세탁을 한 과정과 비슷하다. 이 요술의 중심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다.
나는 386의 막내뻘로서 저 대학생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 아버지는 산업을 물려줬지만 우리는 후배들에게 거짓말만 물려줬다. 개인적 존경은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행 속에서와 국정원 원훈석의 글씨 같은 국가적 존경은 차원이 다르다. 영화 ‘빠삐용’에서 감옥에 갇혀 잠든 빠삐용의 꿈속에 신이 찾아와 “너는 유죄다”라고 하자 빠삐용은 내 죄목이 뭐냐고 묻는다.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인생을 낭비한 죄.” 신영복이 혁명에 성공했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김일성의 노예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죽음을 대신해 청춘을 보석금으로 지불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어리석음의 기록이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감옥에 대한 사색’이다.
신영복은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이던 중 1968년 지하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다. 그 수감생활 동안 외부와 나눴던 서신들을 출간한 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이 책에는 통혁당의 실체는커녕 관련 얘기가 거의 없다. 고난 속 한 인간의 에세이, ‘수형서간문학(受刑書簡文學)’으로 분류될 수 있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다양하고 입체적이며 명징한 증거들로 인해 북한은 물론 남한 좌파 계열에서도 반박이 불가능한 공안 사건들 가운데 하나다. 몇 번의 변명과 부인의 시도가 있었으나 제풀에 사그라졌고 이후 오히려 재검증으로 인해 팩트가 널리 퍼질까 봐 그들 스스로 꺼린 것은 그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문화콘텐츠와 성인군자(聖人君子)’로 화장(化粧)을 해 대중의 기억을 재건축하는 방식을 택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나는 인간 신영복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그것을 읽는 대중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혁명가를 인정한다. 체제를 지키는 자와 체제를 파괴하려는 자는 피차 목숨을 걸고 ‘공평한’ 게임(전쟁)을 한다. 신영복은 허접한 간첩이 아니었다. 통일혁명당 무력전술로서 청와대 포격이 담긴 ‘From paper to steel 작전’의 입안자였다. 남조선 혁명가 신영복에게 대한민국은 제거대상이고 장교 신영복은 국군에는 반역자이자 제자들에게 육사교관 신영복은 배신자일 것이다. 혁명가와 군인은 역사 속에서 서로에게 가해자일 뿐이다. 이러하기에, 남한 주사파들이 비전향장기수들은 예수처럼 떠받들지만, 순국군인과 국군포로들 덕에 자유와 풍요를 누리면서도 그들을 증오하는 심정을 나는 백 퍼센트 이해한다.
김일성은 월남 패망 뒤 사이공에 억류된 한국 외교관들과 신영복을 맞교환하려 굉장한 노력을 했더랬다. 그때 그를 북한으로 보냈다면 좋았을 것이다. 통혁당 특수전술교관 후보로 선발돼 1968년 4월 22일 월북했던 이진영은 통일전선부에서 대남 공작 업무에 종사하던 중 김일성 사진을 올려다보고 “저 양반 정말 잘생겼단 말이야”라고 말한 불경죄로 숙청당했다. 북으로 간 신영복이 그런 식으로 몰락하지 않았더라도 삼대세습 사교전체주의왕조(邪敎全體主義王朝) 속에서 금수산 태양궁전(주석궁) 치장에 쓰일 돈으로 동남아산 옥수수를 안 사서 300만이 굶어죽는 걸 직접 경험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박헌영은 알몸으로 머리에 투구만 쓴 채 굶주린 셰퍼드들에게 물어뜯기는 등의 고문을 2년간 당하다가 총살당했다. 북한이 한반도를 통일한다면 지금 남한에 있는 주사파들도 그런 일을 당할 것이다. 월맹은 베트남 통일 뒤 월남 내 좌익세력을 숙청했는데, 명분이, 한 번 반역자는 또 반역한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신영복이 북한에서 혁명하다가 체포됐다면 20년 20일 만에 특별가석방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 죽었을 테니까. 신영복은 넬슨 만델라가 아니고 김지하도 아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나조차 그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가스라이팅은 주사파 운동권들이 1987년을 거치며 민주화운동가로 신분 세탁을 한 과정과 비슷하다. 이 요술의 중심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다.
나는 386의 막내뻘로서 저 대학생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 아버지는 산업을 물려줬지만 우리는 후배들에게 거짓말만 물려줬다. 개인적 존경은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행 속에서와 국정원 원훈석의 글씨 같은 국가적 존경은 차원이 다르다. 영화 ‘빠삐용’에서 감옥에 갇혀 잠든 빠삐용의 꿈속에 신이 찾아와 “너는 유죄다”라고 하자 빠삐용은 내 죄목이 뭐냐고 묻는다.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인생을 낭비한 죄.” 신영복이 혁명에 성공했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김일성의 노예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죽음을 대신해 청춘을 보석금으로 지불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어리석음의 기록이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감옥에 대한 사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