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영아'가 떠도는 대한민국 [민지혜의 야단법석]
현재 대한민국에서 태어는 났지만 행방을 알 수 없는 아이라고 전국 시·도청에 신고된 건 1069건, 이 중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수사 중인 사건은 939건이다. 이른바 '출생 미신고 아이'. 분명 병원에서 태어난 기록이 있는 이 아이들 중 34명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고 그 중 11명은 살해 가능성이 있어 수사 중이라고 한다. 앞서 '냉장고 영아 사체 유기' 사건처럼 친모가 아이를 살해한 '영화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령 영아'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한기(寒氣)가 있다. 사실 합계출산율 0.78명이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니 하는 통계는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친모가 신생아를 죽여 냉동실에 넣었다거나 뒷산에 묻었다는 건 소름 돋치도록 생생하게 다가온다. 우리 옆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인간이길 포기한, 동물에게도 있는 모성을 내다버린 '금수만도 못한 생명체'가 지근거리에서 숨쉬고 살았다는 얘기다.

몇 년치 수치는 더 많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밝힌 '출생신고가 안된 영아' 즉 '유령 영아'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236명에 달한다. 태어는 났지만 기록상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재 살아있는지 확인도 안된 아이들의 숫자다. 물론 이 중 일부는 지인을 통해 입양됐을 수도 있지만, 정식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은 절차는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거니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베이비박스에 버린 건 그나마 양반. 친모가 영아의 숨통을 끊어 유기를 한 것은 진짜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심지어 영아를 장기 매매의 수단으로 '거래'했을 가능성을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하니, 영화보다 더하다.

물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까지 한 친모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키울 수 없는 경제적 사정'이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든다. 그 어느 것도 '살인'의 명분이 될 순 없다. 그 옛날 기아에 허덕이던 자식들이 부모를 내다버렸던 '고려장'을 우리가 신랄하게 비판해온 것도 인륜에 어긋나서였다. 사랑은 내리사랑만한 게 없다고, 부모의 자식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한 말도 이젠 까마득한 옛말이 됐다.

'처벌'보단 '예방'이 우선이라고들 하지만 살인 처벌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직계존속이나 친권자가 폭력을 이용해 15세 미만 아동을 의도와 상관없이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30년의 징역을, 의도적 살인일 경우엔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우리나라는 영아살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영아유기죄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 발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 것이 인지상정인데, 제 몸으로 낳은 핏덩이를 어떻게 내다버릴 수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죽일 수까지 있는 것인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길고양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달라고,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대한민국에서, 지금 '유령 영아'들이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