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부러 져줬다고?" 재일동포 유도선수의 울분 [책마을]
1972년 뮌헨올림픽 유도 80㎏급에서 은메달을 딴 오승립(왼쪽) /사진=재일본대한민국민단

1972년 8월 26일 뮌헨올림픽이 개막했다. 그 때까지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한 개도 따지 못했다. 한국 선수단을 긴장시킨 건 북한 선수단의 하계 올림픽 첫 참가였다. 남북의 자존심이 걸린 이 대회에서 북한은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종합 22위를 달성했다.

노메달의 위기에서 한국을 구한 건 재일 동포 오승립의 유도 은메달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든 건 축하가 아닌 비난이었다. 결승전에서 패배한 상대가 일본의 세키네 시노부였기 때문이었다. “너 마지막엔 일부러 쓰러져 준 거지?” “일본에 살고 있으니까 일본에 져 준 거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다못한 오승립은 이렇게 말했다. “시합을 하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신다면 그런 말이 나옵니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나라를 위해서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지고 싶어서 지는 인간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한국에 오면 '반쪽발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 재미 좋았냐는 말까지 듣습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라 부릅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우리들 마음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일부러 져줬다고?" 재일동포 유도선수의 울분 [책마을]

<재일코리안 스포츠 영웅 열전>은 이렇게 오승립을 비롯한 재일 한국인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오시마 히로시는 일본의 프리랜서 스포츠 작가다. 메이지대 졸업 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다니며 한국말을 배운 그는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의 교류를 다룬 글을 많이 써왔다.

저자는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선 배경에 재일 한국인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 안타 제조기 장훈, ‘야신’이라 불린 야구 감독 김성근, 한국 프로야구 전무후무한 30승 투수 장명부, 일본 여자농구 실업팀 득점왕 출신으로 한국 국가대표 농구팀 주장을 지낸 조영순 등이 대표적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유도 동메달을 딴 김의태, 도요야마 게이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럭비의 최경호, 마라톤의 김철언, 한국 최초의 프로 골프선수 연덕춘, 한국 여자골프의 대모 구옥희 등도 있다.

1970년대 들어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당근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에 보내주거나,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아시안게임 우승자에 대한 병역 면제, 국제 대회 성적 우수자에 대한 연금 제도 등이 그런 예다.

그와 더불어 재일 한국인 선수에 대한 시선은 차가워졌다. 스포츠가 이권처럼 되면서 재일 한국인은 그 이권을 놓고 다투는 존재로 간주됐다. 스포츠 단체 중 일부는 파벌 싸움이 격심해져 그런 파벌과 관계없는 재일 한국인 선수들은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려웠던 시절 고국의 부름에 응답해 한국 스포츠 수준을 높였던 재일 한국인 선수들은 그렇게 한국의 역사에서도, 일본의 역사에서도 잊힌 존재가 됐다.

책을 번역한 유임하 한국체대 교수는 “재일코리안 출신 선수들은 일상에서 능통하지 못한 모국어 구사 능력 때문에 ‘반쪽발이’로 조롱받으면서도 특유의 강인함으로 한국 스포츠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며 “이들의 활약상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기록돼야 한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