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자 아닌데…" 억울하다는 서초구, 속사정 보니
2008년 도입된 ‘재산세 공동과세’ 등 영향
돈 많이 걷히면 다른 지자체에 나눠줘
재산세 많이 걷혀도 일부만 서초구 몫
나머지는 서울시가 가져가 ‘보조금’ 분배
서울 서초구는 1988년에 독립한 구다. 반포, 강남역 서쪽, 양재, 청계산 일대 등이 서초구에 속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성동구의 일원이었다. 서초에선 곳곳에 '영동'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 지금처럼 번화한 거리를 떠올리기는 힘든 시절의 일이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1975년 10월 성동구 영동출장소와 천호출장소 등 48개 동이 독립해 '강남구'가 됐다. 이어 1980년 관악구의 일원이던 방배동 동작동 사당동 일부가 당시의 강남구에 편입됐다. 서초구가 정식으로 지금의 이름을 얻은 것은 강남구에서 분리 독립한 1988년이다. 서초(瑞草)는 서리풀이라는 뜻인데 서리풀은 상서로운 풀, 곧 벼를 뜻한다고 구청은 해석하고 있다.

총면적은 46.9㎢, 총인구 수는 40만4831명(3월 말 기준)이다. 남자보다 여자 인구가 0.91대 1의 비율로 많다. 서울 전체로 보면 정남 쪽에 있는 구다. 노인인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프랑스타운과 법조타운 등이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까닭에 고속버스터미널과 남부터미널, 화물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서울 강남과 서초는 보통 한 묶음으로 여겨진다. 기업이 많고 세수도 많은 '부자 구(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서초구청 사람들은 정말 그것만큼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이유가 뭘까.

재정력 지수 2등 서초구

서초구가 부자 구라는 인식은 삼성전자 등 기업이 많은 환경에서 시작된다. 기업은 법인세를 내고, 법인세는 국세지만 법인세의 약 10%가량을 '지방소득세'로 소속 지방자치단체에도 납부한다. 다만 삼성전자의 본사는 강남역 인근 '삼성타운'이 아니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매탄동)다. 연 수천억 원 규모의 지방소득세와 여타 지방세도 수원 및 화성 사업장에 납부된다. 그래도 삼성 계열사 중 이곳에 본사를 둔 곳도 있고 관련 기업들도 인근에 둥지를 틀고 있으니 '삼성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경기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세원 역할은 덜한 편인 셈이다. 서초동 일대 법조타운의 경우에도 주변 상권 형성과 이미지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익창출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구의 재정적 수입원과는 거리가 멀다.

지방세의 또 다른 주요 재원 중 하나는 재산세(부동산세와 자동차세 등)다. 이 점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초구가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2008년 도입된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로 재산세의 절반만 서초구 몫이고 절반은 서울시가 가져가고 있다.
서초구청 전경.  /한경DB
서초구청 전경. /한경DB
무엇보다도 서초구가 부자구청이라고 스스로 여기지 않는 이유는 서울시의 개입으로 인한 부의 재분배 효과 때문이다.

서울시는 각 구가 일차적으로 거둔 세금을 바탕으로 '재정력 지수'를 계산하는데, 재정력 지수는 구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돈에 비해 세수를 많이 거두는지 적게 거두는지 따지는 지수다. 100%면 딱 필요한 만큼 번다는 뜻이다. 서울의 재정력 지수 1등은 언제나 강남구다. 올해 기준으로 166%에 달한다. 그래서 강남구는 유일하게 서울시에서 조정교부금을 받지 않는 구다.

2등이 서초구다. 서초구의 재정력 지수는 99.9%다. 100%가 필요하다고 하면 0.1%가 딱 모자란다는 얘기다. 꼴찌인 노원구의 경우 재정력 지수가 51.6%에 불과하다. 만약 각 구에서 각자 번 대로 각자 쓴다고 치면 노원구는 항상 적자를 면치 못하고 강남구는 항상 돈이 남아돌아 고민일 것이다.

조정교부금으로 키맞추기

우리 지방재정 제도는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고 남는 쪽에서 모자라는 쪽으로 돈을 재분배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삼고 있다. 전국 어디에서 살든지, 서울 중에서도 어디에서 살든지 비슷한 수준의 행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일수록, 강남일수록 더 돈이 많이 걷히니 여기서 더 걷어서 다른 지자체에 나눠준다. 이를 '교부금'이라고 부른다. 명목을 지정해서 내려보내는 '보조금'도 재분배 역할에 사용된다.

행정안전부는 주로 광역자치단체에 교부금을 내려보내고, 서울시 같은 광역자치단체에서 다시 하위 지방자치단체에 교부금을 내려보낸다. 서울시가 각 구에 주는 교부금의 이름은 '조정교부금'이다.
"우리 부자 아닌데…" 억울하다는 서초구, 속사정 보니
조정교부금을 받기 전 기준으로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의 재정력 지수는 51.6(노원)~166(강남)%로 편차가 크지만, 조정교부금을 반영한 후에는 이 비율이 100.9~101.81%로 거의 비슷하게 맞춰진다. 작년 기준으로 보면 서초구가 받은 조정교부금 규모는 67억원에 불과하지만 노원구는 2550억원에 달한다.

서초구의 조정 후 재정력 지수는 101.3%이다. 등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차이이나 25개 구 중 10등 수준이라고 서초구는 설명하고 있다. 서초구민의 구세 부담액은 1인당 89만원, 노원구의 구세 부담액은 1인당 26만원인데도 1인당 세출액은 노원구가 1인당 230만원으로 서초구 198만원보다 많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조정교부금의 효과다. 노원구 쪽에서 복지 등의 목적으로 지출 수요가 많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가 도입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재분배의 명분을 강화한다. 공동과세를 하면 처음부터 그것은 네 몫이 아니라고 못을 박는 셈이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세수가 많이 걷히는 강남구의 경우에도 조정 후 재정력 지수가 높지 않다. 그러나 서초구의 경우에는 실제 빠듯한 속사정보다 이미지가 너무 '부자 구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보조금 책정 기준 등에서 다소 불리한 처지가 된다는 것이 서초구청 사람들의 속마음이다.

지난해 1조원 지출… 올해는 감소 예상

서초구청이 작년 말에 잡아놓은 올해 본예산 규모는 8530억원이다. 일반회계가 8015억원, 특별회계가 515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작년 결산 규모를 보면 1조원을 넘어섰다. 추가 경정 과정에서 예산을 더 잡아서 쓴 것이다.

다만 올해 사정은 작년보다는 다소 빠듯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올해 464억원가량 감추경을 했다"며 "공시지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재산세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해 본예산을 기준으로 서초구는 지방세로 3634억원(일반회계 및 기타 특별회계 전체 금액의 42.6%), 세외수입으로 1126억원(13.2%), 지방교부세로 163억원(1.9%), 조정교부금으로 38억원(0.4%)을 충당한다. 이외에 보조금 2702억원(31.7%) 등이 서초구 예산을 구성한다.

이렇게 들어온 돈은 사회복지 분야에 가장 많은 몫(3573억원, 41.9%)이 사용된다. 보육이나 가족, 여성 분야에 1682억원, 노인과 청소년 분야에 787억원, 취약계층지원에 491억원,기초생활보장에 391억원 등이다.

항목의 성질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인건비로 15.3%(1301억원)가 사용되고 사회보장적 수혜금 등 경상이전 형식으로 56.7%(4837억원), 민간단체에 위탁하거나 사업비 보조 등을 해 주는 민간이전의 형식으로 27.4%(2334억원) 등이 쓰일 예정이다.
올해 서초구의 각 분야별 예산이 일반회계(8015억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 / 서초구청 홈페이지.
올해 서초구의 각 분야별 예산이 일반회계(8015억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 / 서초구청 홈페이지.
올해 예산에서 서초구가 방점을 찍는 분야는 산업과 환경이다. 산업 및 중소기업 에너지 등의 분야에 대한 예산은 72억원에서 98억원으로 35% 늘었다. 환경 분야 예산은 452억원에서 616억원으로 15% 늘어났는데, 특히 산지형 공원 관리와 환경보호 등 자연 항목의 예산이 29억원에서 82억원으로 180% 넘게 증가했다. 대기질 관리 등에도 전년 대비 2.8배 수준의 금액이 배정됐다.

'적극적이고 친절한 민원관리'를 위한 항목에 작년엔 140만원만 배정됐는데 올해는 8630만원으로 6064% 증가한 점도 도드라진다. 청년정책활성화, 행복문화공간 조성, 노인 복지시설 인프라구축, 보육시설 확충, 문화예술 활성화 지원, 재난대비 안전관리시스템 구축 등도 상승폭이 큰 항목들이다.

반면 체육 관련한 지출은 상당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체육 예산은 127억원에서 41억원으로 감소하는데 특히 공공체육시설 관련 예산이 109억원에서 약 20억원으로 80% 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자료관리와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예산은 2억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소폭 늘었는데 이 중에서 중개사무소 관리에 관한 예산(작년 1839만원에서 올해 754만원)은 줄어든 반면 도로명주소 부여, 공시지가 관리 등에 관한 예산은 조금씩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