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막무가내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부작용들
부산 해운대 인근의 한 족발집 냉장고에는 김칫국물 묻은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매달 내야 하는 고정비 지출 목록을 정리한 것이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명세에는 전기요금, 가스비, 재료비, 임차료, 배달 수수료, 가맹점비, 상인회 회비, 파트타임 알바생 인건비, 보험료 등이 빼곡하다.

냉장고 귀퉁이에 자리 잡은 유난히 깔끔한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깍두기’라고 쓰여 있었다. 족발집 A사장은 “깍두기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계 구입비”라며 “전에는 반찬을 전담하는 아줌마를 뒀지만, 지금은 사람 대신 기계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깍두기 크기도 손쉽게 조절할 수 있고 심지어 채를 써는 것도 가능해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족발집 사장은 어떻게 기계를 구입하게 됐을까.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인건비가 너무 올라 감당이 안 돼 기계로 눈을 돌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정이 넉넉해지면 기계가 대체한 사람이 다시 고용될 수 있을까. A사장의 답변을 보면 전망은 밝지 않다. 그는 “못해도 매달 200만~300만원은 들던 비용이 기계에는 40만원이면 충분하다”며 “최저임금이 시급 1만원을 넘어가면 파트타임 알바생마저 내보낼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기계 도입을 늘렸으면 늘렸지, 추가 채용 계획은 없다”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노동계가 현실을 외면한 막무가내식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사이 소상공인·중소기업 현장에선 ‘조용한 해고’가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8.6%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고율 인상될 경우 ‘신규 채용 축소’(60.8%)나 ‘기존 인력 감원’(7.8%)으로 대응하겠다는 응답이 거침없이 나왔다. 족발집의 사례와 같은 ‘기계 도입 러시’도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지난 11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노사 양측의 수정안을 논의했지만, 여전히 노동계(1만1140원)와 경영계(9740원)의 간극은 크다. 만약 노동계의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관철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힘없는 중소기업 근로자와 영세 상인에게 칼이 돼 돌아올 것이다. 노동계도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알바생이 차지하던 공간을 키오스크가 대체해버린 장면을 보고 있지 않은가. 기계에 밀려난 힘없는 이들의 원성을 노동계 대표들은 과연 어떻게 책임질지 자신에게 무겁게 물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