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명낙회동' 불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버금가는 앙숙은 뉴욕타임스(NYT)였다. NYT는 대선 기간 내내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과 세금 탈루 의혹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선거에서 이긴 트럼프 측은 화해 자리를 추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회동 예정일 오전 트위터에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 글을 올렸다. “망해가는(falling) NYT”라는 표현과 함께 회동 조건을 이유로 댔으나, 정황상으론 만나기 싫어 안 만나려고 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전 총리 간 이른바 ‘명낙회동’이 불발됐다. 저녁을 겸한 ‘막걸리 회동’을 하기로 했으나, 당일 오후 4시30분쯤 취소하고 날짜를 다시 잡기로 했다. 2021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이 전 총리 귀국 후에도 17일이나 지나서야 만날 예정이었는데, 이 또한 미뤄진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폭우다. 물난리 중 떠들썩한 자리를 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것이라는데, 두 사람과 배석자 한 명씩 2+2 소규모 자리에서 그런 지탄받을 상황이 생겼을까 싶다. 그보다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으로 비 핑계를 댄 듯하다. 양측 지지자 간 전쟁터가 된 민주당 당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명낙회동을 하면 탈당할 것”이란 ‘협박’ 글들이 있다.

‘수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은 더 궁색하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재난을 무기화하는 데 능숙한 민주당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는 데도 ‘재난’을 들먹이고 있다. 그동안 재난 프레임만 씌우면 온 사회가 항변할 수 없는 집단 무기력에 빠져든다는 것을 터득한 듯하다.

호우에 막걸리 자리가 찜찜했다면, 차 마시는 자리로 했으면 되지 않을까. 폭우를 뚫고도 만나는 모습에 화합의 진정성이 더 느껴졌을 것 같다. “사랑은 핑계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언어의 온도/이기주)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설득력 없는 호우 핑계를 대며 문턱을 더 높이고 있다. 트럼프는 사태 전개가 불리해 보이자 6시간 만에 ‘회동 취소’를 취소하고 NYT를 방문했지만, 두 사람은 날짜도 바로 잡지 않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