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민음사 제공
밀란 쿤데라. 민음사 제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세계적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세상을 떠났다.

12일 로이터 통신은 체코 매체를 인용해 쿤데라가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항년 94세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체코 출신 작가인 쿤데라는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쿤데라는 1929년 4월 1일 체코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세에 시인으로 데뷔했고 작곡,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그의 소설 <농담>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농담 한 마디로 인해 인생이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시대와 폭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농담> 프랑스판 서문에서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 루이 아라공은 쿤데라에 대해 “금세기 최고 소설가중 한 사람"이라며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줬다”라고 극찬했다.

공산체제였던 체코에서 교수 등으로 활동했던 쿤데라는 1968년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이후 고초를 겪었다. 저서를 압수당했고 집필과 강연 활동에 제한을 받기도 했다. 도서관에 있던 그의 책도 자취를 감췄다.

쿤데라는 결국 1975년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당시 자동차에 LP판과 책 몇 권만 싣고 넘어왔다고 전해진다. 2년 뒤에는 체코 국적을 박탈당했다.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망명 후 소설가로 성공한 것에 대해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쿤데라는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 파리 대학 등에서 강단에 섰다.

1984년 출간한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1988년 국내에 소개된 이후 한국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렸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바탕으로 '단 한 번뿐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삶의 무의미함을 말한다.

쿤데라의 작품으로는 <무의미의 축제>, <삶은 다른 곳에>, <불멸>, <배신당한 유언들>, <이별의 왈츠>, <느림>, <정체성>, <향수> 등이 있다.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추방 이후 40여년 만인 2019년에 체코 시민권을 회복했고, 2020년 9월 체코에서 작가에게 주는 최고 문학상인 카프카상을 수상했다.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뜨게 됐다. 노벨문학상은 살아 있는 작가에게만 수여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번역한 이재룡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쿤데라는 망명작가라는 이력으로 인해 당대 정치적으로 해석됐지만, 작품을 통해 말하기를 원했던 작가"라며 "사망 전까지 30년 넘게 언론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번역본에도 약력이나 해설을 싣지 못하도록 하며 독자들이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를 원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그의 작품에는 성(性), 폭력, 인생의 의미 등 인간 공통의 상념이 녹아들어 있다"며 "쿤데라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삶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르몽드'는 그의 부고를 전하며 "지칠 줄 모르는, 소설과 소설에 대한 권리의 옹호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썼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