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캐나다 작가…마고할미 등 설화 속 캐릭터 이용 통념 뒤집어
권력 지닌 할머니·지혜로운 구미호…제이디 차 한국 첫 개인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40)는 어렸을 적 밤마다 한국인 어머니가 들려주는 전래동화를 통해 한국의 설화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과거를 통해 선조와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작가는 이후 온라인과 관련 문헌 등을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한국의 전통을 공부했고 특히 샤머니즘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후 세상을 창조했다는 마고할미나 무당들의 조상인 바리공주 같은 설화 속 인물, 구미호 같은 동아시아권의 요괴 캐릭터, 조각보 등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13일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에서 개막한 제이디 차의 첫 한국 개인전에서는 이런 모티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전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작품에서는 모티브 하나하나가 갖는 상징성,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작 회화 등 33점을 소개하는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해태를 타고 있는 마고할미다.

마고할미 양옆에는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아 각각 일곱개의 보름달과 밴쿠버의 일몰을 표현한 천이 걸렸다.

권력 지닌 할머니·지혜로운 구미호…제이디 차 한국 첫 개인전
마고할미 뒤로는 두 개의 문이 있다.

문을 가린 천을 헤치고 들어서면 미로처럼 꾸며진 공간이 펼쳐진다.

미로를 따라가면 초상화 형식으로 작가의 모티브들을 그린 그림을 만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여성, 또는 할머니다.

여성, 특히 할머니는 대개 힘없고 연약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제이디 차의 그림 속 할머니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신(마고할미)이자 인간의 탄생에도 관여하는 신(삼신할매)처럼 힘을 지닌 강한 존재다.

작가는 나이 든 여성 이미지를 자주 사용하는 데 대해 "가부장 사회에서는 여성이 육아를 마치거나 가임기가 끝나면 성적 매력도 없어지고 쓸모없게 묘사되지만, 노인이나 여성도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할머니를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는 '젊은 게 최고'라는 식의 메시지가 있지만 나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혜와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권력 지닌 할머니·지혜로운 구미호…제이디 차 한국 첫 개인전
작가는 동물의 이미지도 뒤집는다.

매력적이지만 교활하고 사람을 홀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곤 하는 여우나 구미호는 역시 수호자나 지혜로운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호랑이는 대개 남성성과 용맹성을 상징하지만 그림 '할머니 산'에서는 산 모양으로 화면 중앙에 자리 잡은 할머니의 품 안에 얌전히 앉아있다.

캐나다에서 한국의 비둘기처럼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는 갈매기에게도 인간의 귀와 몸, 또는 여우와 합성해 혼종 생물로 만들고 신화적 존재로 지위를 부여한다.

뿔소라도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다.

뿔소라를 채취하는 제주 해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뿔소라는 그 껍데기가 무언가의 '집'이었다는 의미와 함께 아이들의 놀이에서 전화기처럼 쓰인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과 자기 고향인 밴쿠버를 잇는 매개체가 된다.

권력 지닌 할머니·지혜로운 구미호…제이디 차 한국 첫 개인전
미로처럼 구성한 전시 공간과 바닥에 깔린 조각보 색상의 카펫, 곳곳에 설치된 꼭두 모양의 조형물들, 이를 이용한 그림자 이미지 연출, 사당과 제단처럼 연출된 구조물에 배치한 그림 등 전시장 디자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가는 "무대 같은 전시장, 즐기면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작품을 두고는 '한국적이지만 동시에 한국적이지 않다'는 모순된 평가가 나온다.

작가는 이에 대해 "아시아 특유의 고유성을 서구적인 맥락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내 작품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력 지닌 할머니·지혜로운 구미호…제이디 차 한국 첫 개인전
작가는 201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2021년에는 상하이비엔날레, 지난해에는 제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특히 지난해 영국 런던의 공공미술관인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도 화이트채플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일부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적인 요소가 뻔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한국에서 잘나가는 게 뭔지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작업에서) 사용한 조각보는 서구의 추상화로도, 퀼팅으로도 연결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세요.

한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용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이번 전시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권력 지닌 할머니·지혜로운 구미호…제이디 차 한국 첫 개인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