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했다. 지난 2월과 4월, 5월에 이어 네 번째 동결이다. 인플레이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둔화 우려가 크다는 점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다. 그런데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끝났다는 설익은 기대에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가 되살아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06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가 폭도 한 달 새 5조9000억원에 달해 2021년 9월 이후 1년9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3월까지 감소세를 유지하다가 4월 이후 증가세로 전환했다. 금리 인하가 임박했다는 전망에 집값 바닥론이 퍼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영향이다. 지난달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은 7조원으로 2020년 2월 이후 3년4개월 만에 최대였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102.2%로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조사 대상국 중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를 웃돈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번 금리 동결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오는 2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경우 한·미 금리차는 2%포인트까지 확대된다. 23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벌어지는 셈이다. 이런 금리 역전 폭은 국내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새마을금고 사태에서 보듯 금융시장 불안도 여전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향후 금리 수준과 관련해 “통화정책 운용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계부채가 예상 밖으로 크게 늘어나면 금리를 올려 대응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총재가 금리 결정 변수로 가계부채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어제 “주요 20개국(G20) 대부분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 목표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며 “섣부른 축배(premature celebrations)를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계도 위험한 빚투 유혹에서 벗어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영끌은커녕 오히려 빚을 줄여 다가올 경기 침체와 금융시장의 변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할 때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대출과 함께 오는 9월 상환유예가 끝나는 자영업자 채무도 시한폭탄이다. 정부는 채무조정 지원 프로그램을 가속화해 우리 경제에 도사린 ‘빚 폭탄’의 뇌관을 서둘러 제거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