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원선 외래진료·수술 미뤄…경증 입원환자엔 전원·퇴원 안내도
환자·보호자 근심 가득…"큰 차질 못 느껴" 반응도
"수술 못받으면 어쩌나"…파업 첫날 불안 커진 병원(종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대규모 총파업에 돌입한 13일 우려했던 '대란' 수준의 차질은 없었지만 병원 곳곳에서 진료와 약조제가 지연돼 시민 불편이 이어졌다.

일부 병원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일단 미루거나 경증 입원환자에게 퇴원·전원을 안내하면서 환자들이 불안과 걱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필요한 처치를 때맞춰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조합원 7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병원에서는 이날 오후 대체로 큰 차질 없이 업무가 이뤄졌지만 환자 중에서는 진료 대기가 길어졌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황반변성을 앓는 모친의 외래 진료에 동반한 송모(54)씨는 "예약 시간을 1시간 늦춘다는 안내를 지난주에 받았다.

이 병원을 7∼8년 다녔는데 진료 시간이 바뀐 건 처음"이라며 "한참 전에 도착했는데 '수술 시간이 늦어졌다'고 2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남 양산의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부친의 처방 약 조제를 기다리던 허만석(62)씨도 "30분 기다렸는데 안내 화면에 58분 더 기다리라고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허씨는 평소엔 약이 20분이면 나왔다고 했다.

대기 화면에는 107분을 대기해야 한다는 환자도 있었다.

9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대전 충남대병원에서는 외래 진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은 환자가 "담당 교수도 있는데 왜 진료를 받지 못하느냐"면서 접수처에 고성으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이 병원은 오는 14일까지 잡혀 있는 외래 진료와 수술은 연기하는 한편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경증인 입원 환자에게 퇴원하라고 안내한 상태다.

멀리서 왔다는 한 환자는 "오늘 아침에야 진료 예약 취소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전화도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수술 못받으면 어쩌나"…파업 첫날 불안 커진 병원(종합)
병원에서 직·간접적으로 퇴원이나 전원 요청을 받은 환자들 사이에선 불만과 근심이 흘러나왔다.

경희대병원에 다리 골절로 한 달째 입원 중인 손모(55)씨는 '파업으로 인력 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퇴원을 간접적으로 요청받았다면서 "내 돈을 내고 입원했는데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파업한다고 환자를 내보낼 것이라면 병원 문을 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파업이 계속돼 수술이나 항암치료 같은 중요한 처치가 늦어지거나 문제가 생길까봐 우려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양산부산대병원 통증의학과에 외래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조모(52)씨는 "오늘처럼 사람이 없는 날은 처음 본다"며 "18일로 예정된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비쳤다.

세종 충남대병원에서 항암 치료 중이라는 한 환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파업으로 항암이 진행될 수 없다고 한다.

의료기기를 달 건지, 기다렸다 입원할지 정해야 하는데 월요일에 입원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해 걱정"이라고 썼다.

미리 상당수의 환자를 퇴원시켜 평소와는 달리 매우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병원도 있었다.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평소에는 외래환자가 4천여명 방문하는데 오늘은 예약 환자들밖에 없다"면서 "중환자와 산모를 제외하고 일반병동에 있는 환자 700여명은 파업에 대비해 전날까지 모두 퇴원시켰고 현재 퇴원이 어려운 환자만 100여명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이날 대동맥응급, 산부인과 응급 등 10개 분야의 응급진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수술 못받으면 어쩌나"…파업 첫날 불안 커진 병원(종합)
별다른 차질이나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20여명이 파업에 동참하는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약 2주째 입원한 신모(55)씨는 "벽보를 보고 파업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찰이 늦어지거나 간호가 소홀해졌다고 느끼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입원하는 직장 동료와 함께 병원을 찾은 이종현(31)씨도 "진료나 접수가 늦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병원으로부터 입원 병실이 변경될 수는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에서 정형외과 외래진료를 본 서승환(51)씨는 "어제 병원에서 '파업 때문에 진료가 오래 걸릴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다"며 "큰 문제 없이 금방 진료받고 나왔다"고 했다.

광주 동구 조선대 병원에서는 외래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12개 접수창구도 빈자리 없이 환자들을 맞았다.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속한 보건의료노조는 인력과 공공의료 확충 등을 주장하며 이날 오전 7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했다.

보건의료노조의 이번 총파업은 지난 2004년 의료민영화 저지·주5일제 관철을 주장하며 파업한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며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에선 서울대병원 등 이른바 '서울 빅5' 중에서 파업 참여 의료기관은 없지만 경희대병원·고려대안암병원·고려대구로병원·이대목동병원·한양대병원 등 전국 20곳 안팎의 상급종합병원이 파업에 참여했다.

(김정진 박주영 송정은 안정훈 이율립 정종호 차근호 천정인 최원정 기자)
"수술 못받으면 어쩌나"…파업 첫날 불안 커진 병원(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