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영화도 만들어?"...이란이 낳은 거장 키아로스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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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익환의 누벨바그워치
이란은 변방이다. 핵무기나 개발하고 서방세계에 괜한 시비를 거는 '악의 축', '깡패국가'쯤으로 취급된다. 이란 영화를 봤다고 하면 "그런 나라에서도 영화를 만드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이란 영화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접한다면 이 같은 편견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할리우드·유럽과는 판이한 미학을 추구한 이들 영화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이란 영화계에서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가장 눈길을 끈다. 그는 '거장들이 꼽는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1940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난 키아로스타미는 20대에 텔레비전 광고와 포스터 등을 만들었다. 1974년 '여행객'이라는 영화로 영화감독으로 처음 데뷔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영화들은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40대 후반인 1987년.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출품하면서 그는 일약 거장 반열에 올랐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는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란 영화와 함께 그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을 비롯해 1992년작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1994년작 ‘올리브나무 사이로’ 등은 키아로스타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들 세 작품을 묶어서 ‘지그재그 3부작’, '코케르 3부작'으로 통한다.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란 북부의 코케르 마을과 포시테 마을은 올리브 나무가 곳곳에 심겨 있다. 넓은 평원도 인상적이다. 두 마을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지그재그 길도 눈길을 잡는다. 키아로스타미 3부작 주인공들은 코케르의 지그재그 길을 열심히 걷는다.
느슨한 구성의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영화 운동 '누벨바그'나 시나리오를 그때그때 손질하고 재해석하는 한국 홍상수 영화와는 다른 흐름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다르덴 형제 영화와도 판이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아이와 시골의 풍경이 묘한 흡입력과 매력을 발산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6~8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 소년은 학교에서 실수로 친구의 노트를 가져온다. 그 친구는 숙제를 매번 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학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자기 잘못으로 친구가 퇴학 될 수 있다는 걱정에 소년은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선다. 친구에게 노트를 돌려주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된 것이다. 친구가 사는 코케르로 가기 위해 지그재그 길을 쉴새 없이 뛰어다닌다. 결국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한 소년은 밤을 새워 친구의 숙제를 대신한다. 숙제를 마친 노트를 아침에 친구에게 넘긴다. 그렇게 두 아이는 웃으면 영화는 끝이 난다.
밝은 내용이다. 하지만 떨어져서 보면 코케르 마을 아이들의 현실은 어둡고 참혹하다. 코케르는 수백 년 전 진흙·목재로 지은 집을 그대로 쓰고 있다. 가난한 일상에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존재로 보인다. 어른과 비슷한 수준의 노동 활동을 강요하고, 학업과 자유시간을 옥죄기만 한다. 가난을 벗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는 데다 미래도 어둡다.
하지만 코케르 마을 사람들을 클로즈업해서 보면 모두가 여유롭다. 낙관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친구와 이웃을 아끼는 마음이 각별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도 코케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코케르 사람들의 여유와 낙관은 '지그재그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도 연결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1990년 그의 아들과 당시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코케르 지역을 찾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연 배우인 소년들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고스란히 살려 1994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감독은 코케르를 찾기 위해 차로 여기저기를 훑는다. 동생을 보낸 아이들과 자녀를 잃은 부모, 동생을 잃은 청년들과 만난다. 이들은 슬픔보다는 달관하고 삶을 살아야 하고 버텨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지진으로 집을 잃었지만, 월드컵을 보려고 TV용 안테나를 설치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은 지진으로 조카 3명과 여동생을 잃었다. 감독은 "가족이 죽었는데 축구 경기가 대수냐"고 묻는다. 그러자 청년은 "지진은 지진이고 월드컵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데 어떡하겠느냐"고 답한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참혹한 인생을 달관하는 듯한 태도도 포착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묘사 방식이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지루하다.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 1시간 30분 길이의 이 영화를 집중력 있게 감상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면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접근할 수 있다. 코케르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민들의 친근하고 낙관적 시각은 접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있다. 여기에 코케르 3부작의 라스트신은 영화사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OTT로 그의 영화를 접하기 보다는 키아로스타미 특별전이 열리는 극장에서의 관람을 권하고 싶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이란 영화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접한다면 이 같은 편견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할리우드·유럽과는 판이한 미학을 추구한 이들 영화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이란 영화계에서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가장 눈길을 끈다. 그는 '거장들이 꼽는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거장들이 꼽는 거장
2016년 7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별세했다. 전 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그의 부고 기사를 올렸다. '택시드라이버', '좋은 친구들'을 만든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콜시지 감독 등은 추모의 글을 썼다. 생전에 그는 거장들의 극찬을 받았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 등의 찬사를 받았다. "키아로스타미에게서 영화를 다시 배웠다"는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1940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난 키아로스타미는 20대에 텔레비전 광고와 포스터 등을 만들었다. 1974년 '여행객'이라는 영화로 영화감독으로 처음 데뷔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영화들은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40대 후반인 1987년.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출품하면서 그는 일약 거장 반열에 올랐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는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란 영화와 함께 그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을 비롯해 1992년작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1994년작 ‘올리브나무 사이로’ 등은 키아로스타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들 세 작품을 묶어서 ‘지그재그 3부작’, '코케르 3부작'으로 통한다.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란 북부의 코케르 마을과 포시테 마을은 올리브 나무가 곳곳에 심겨 있다. 넓은 평원도 인상적이다. 두 마을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지그재그 길도 눈길을 잡는다. 키아로스타미 3부작 주인공들은 코케르의 지그재그 길을 열심히 걷는다.
이란 북부마을의 소박한 삶…아름다운 환경 묘사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기성 영화와는 매우 다른 작법을 따랐다. 전문 배우를 쓰지 않았다. 코케르 마을 주민을 섭외해 영화를 만들었다. 기승전결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사도 복잡하지 않다. 코케르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느슨한 구성의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영화 운동 '누벨바그'나 시나리오를 그때그때 손질하고 재해석하는 한국 홍상수 영화와는 다른 흐름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다르덴 형제 영화와도 판이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아이와 시골의 풍경이 묘한 흡입력과 매력을 발산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6~8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 소년은 학교에서 실수로 친구의 노트를 가져온다. 그 친구는 숙제를 매번 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학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자기 잘못으로 친구가 퇴학 될 수 있다는 걱정에 소년은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선다. 친구에게 노트를 돌려주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된 것이다. 친구가 사는 코케르로 가기 위해 지그재그 길을 쉴새 없이 뛰어다닌다. 결국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한 소년은 밤을 새워 친구의 숙제를 대신한다. 숙제를 마친 노트를 아침에 친구에게 넘긴다. 그렇게 두 아이는 웃으면 영화는 끝이 난다.
밝은 내용이다. 하지만 떨어져서 보면 코케르 마을 아이들의 현실은 어둡고 참혹하다. 코케르는 수백 년 전 진흙·목재로 지은 집을 그대로 쓰고 있다. 가난한 일상에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존재로 보인다. 어른과 비슷한 수준의 노동 활동을 강요하고, 학업과 자유시간을 옥죄기만 한다. 가난을 벗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는 데다 미래도 어둡다.
하지만 코케르 마을 사람들을 클로즈업해서 보면 모두가 여유롭다. 낙관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친구와 이웃을 아끼는 마음이 각별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도 코케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서구 영화와 다른 작법
코케르 마을과 주민들의 낙관은 영화 곳곳에 녹아들었다. 올리브 나무숲과 평원으로 둘러싸인 코케르 마을의 풍경도 영화의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코케르 사람들의 여유와 낙관은 '지그재그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도 연결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1990년 그의 아들과 당시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코케르 지역을 찾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연 배우인 소년들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고스란히 살려 1994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감독은 코케르를 찾기 위해 차로 여기저기를 훑는다. 동생을 보낸 아이들과 자녀를 잃은 부모, 동생을 잃은 청년들과 만난다. 이들은 슬픔보다는 달관하고 삶을 살아야 하고 버텨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지진으로 집을 잃었지만, 월드컵을 보려고 TV용 안테나를 설치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은 지진으로 조카 3명과 여동생을 잃었다. 감독은 "가족이 죽었는데 축구 경기가 대수냐"고 묻는다. 그러자 청년은 "지진은 지진이고 월드컵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데 어떡하겠느냐"고 답한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참혹한 인생을 달관하는 듯한 태도도 포착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묘사 방식이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지루하다.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 1시간 30분 길이의 이 영화를 집중력 있게 감상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면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접근할 수 있다. 코케르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민들의 친근하고 낙관적 시각은 접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있다. 여기에 코케르 3부작의 라스트신은 영화사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OTT로 그의 영화를 접하기 보다는 키아로스타미 특별전이 열리는 극장에서의 관람을 권하고 싶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