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부작용?…실업급여는 왜 '달콤한 시럽급여' 오명 썼나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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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도입된 실업급여 제도,
소소한 변화 거치다 文정부 때 큰 변화
수급요건 완화하고 지급 기간 늘리며
반복수급 경향성 뚜렷하게 증가했다
소소한 변화 거치다 文정부 때 큰 변화
수급요건 완화하고 지급 기간 늘리며
반복수급 경향성 뚜렷하게 증가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실업급여'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기로 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소득보다 많다는 점과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는 반복 수급자가 많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당정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노동개혁특위-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받는 게 일해서 버는 것보다 많아지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현장에선 실업급여를 타려고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는 일이 발생하고, 사업주는 퇴사시켜달라는 직원을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고 했다.
이에 따라 부작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함께 도입됐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첫째, 일정 기간 근로 경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 사직 사유가 자발적이어선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문제는 '일정 기간'의 근로 경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와, '얼마'를 '얼마나 오래' 지급할 것인데 이는 실업급여 제도가 정착하면서 조금씩 변했다.
도입 당시에는 실업 이전 18개월 동안 12개월 이상 근로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나,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12개월 동안 6개월 이상 근로해야 하는 것으로 완화된 데 이어 2000년에 들어선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로하면 받을 수 있게 됐다.
도입 당시엔 없었던 실업급여 하한액 제도도 생겨났다. 1998년 저소득 근로자의 생계보장을 위해 최저임금의 70%로 한시적 도입됐던 하한액 제도는 2000년에는 최저임금의 90% 수준으로 상향 조정돼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최저임금이 급속하게 올라가며 지금의 80% 수준으로 조정됐다.
'비자발적 사직'이라는 최소한의 조건도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점차 완화됐다. 사업장에서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은 경우, 사업장에서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휴직해야 하나 허용되지 않아 이직한 경우 등에는 비자발적 사직이 아니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우선 '18개월 이내 180일 이상' 근로해야 받을 수 있던 수급 요건을 24개월 이내 180일 이상으로 늘려 단시간 근로자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주 2일 이하 15시간 미만으로 사실상 '아르바이트'를 하는 근로자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급 기간도 늘렸다. 연령에 따라 기존 3~8개월 받을 수 있던 것을 4~9개월 동안 받을 수 있도록 30일 이상 연장했다. 실직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의 촉진이라는 두 가지 목표 중 전자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 따라 실업급여 반복수급 경향성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실업급여 도입 첫 10년(1998년~2007년)에는 2회 이상 반복수급을 한 사람의 비율이 13.4%에 그쳤다. 실업급여를 딱 한 번 수급한 사람이 전체의 86.6%로 순기능이 훨씬 더 컸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던 것이 실업급여 제도가 대대적으로 '개선'된 2018년부터는 '5년간 3번 이상' 반복 수급하는 사례가 연 10만 명을 넘겼다. 심지어 동일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과 재취업을 반복하는 사례도 나왔다. 매년 부정수급자는 2만 명 이상 적발되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최저임금보다 높아진 것도 문제가 됐다. 2022년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은 179만9800원인데 최저 월 실업급여는 184만7040원이었다. '노는' 실업급여 수급자가 '일하는'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많이 버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널러진 수급 기준 덕에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빠르게 쪼그라들었음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당시 한국노동연구원은 실업급여 제도 개편에 따라 연간 2조원 이상의 재정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는 제도 개편 전인 2017년 10조 2000억원이었던 적립금이 2022년 마이너스 3조9000억원으로 악화됐다.
2021년 3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5년 내 3회 이상 수급할 경우 감액'에 동의한 응답자 비율은 52.8%였다. 반면 '사회적 안전망이 약화될 수 있어 반대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은 26.4%에 그쳤다. 나머지 20.7%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번 당정의 움직임을 두고서도 여론은 분분하다. 실업급여 손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어려운 나라에서 오죽하면 해고할까 생각해봐야 한다", "일하기보다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반대한다, "실업급여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니 손봐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
반면 "폐지보다는 수급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 "그럼 급여 중 세금으로 고용 보험 떼지 마라"는 등의 부정적 의견도 있었다.
한편,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당정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노동개혁특위-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받는 게 일해서 버는 것보다 많아지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현장에선 실업급여를 타려고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는 일이 발생하고, 사업주는 퇴사시켜달라는 직원을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고 했다.
1995년 도입 당시부터 우려했던 '예견된' 부작용
어쩌면 예견된 부작용이었다. 특히 실업 급여 '반복 수급' 문제는 지난 1995년,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지적돼왔다. 한국보다 앞서서 실업급여를 도입한 선진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업급여를 받은 적 있는 사람이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직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의 촉진이라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재취업의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부작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함께 도입됐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첫째, 일정 기간 근로 경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 사직 사유가 자발적이어선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문제는 '일정 기간'의 근로 경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와, '얼마'를 '얼마나 오래' 지급할 것인데 이는 실업급여 제도가 정착하면서 조금씩 변했다.
도입 당시에는 실업 이전 18개월 동안 12개월 이상 근로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나,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12개월 동안 6개월 이상 근로해야 하는 것으로 완화된 데 이어 2000년에 들어선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로하면 받을 수 있게 됐다.
도입 당시엔 없었던 실업급여 하한액 제도도 생겨났다. 1998년 저소득 근로자의 생계보장을 위해 최저임금의 70%로 한시적 도입됐던 하한액 제도는 2000년에는 최저임금의 90% 수준으로 상향 조정돼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최저임금이 급속하게 올라가며 지금의 80% 수준으로 조정됐다.
'비자발적 사직'이라는 최소한의 조건도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점차 완화됐다. 사업장에서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은 경우, 사업장에서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휴직해야 하나 허용되지 않아 이직한 경우 등에는 비자발적 사직이 아니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文정부 1년 차에 대대적 손질 → 반복수급 늘며 기금 쪼그라들어
그랬던 실업급여가 '대대적으로' 바뀐 것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말, 정부는 "실업급여 제도를 22년 만에 대폭 개선한다"고 홍보하며 실업급여의 지급 수준과 지급 기간을 수정했다.우선 '18개월 이내 180일 이상' 근로해야 받을 수 있던 수급 요건을 24개월 이내 180일 이상으로 늘려 단시간 근로자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주 2일 이하 15시간 미만으로 사실상 '아르바이트'를 하는 근로자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급 기간도 늘렸다. 연령에 따라 기존 3~8개월 받을 수 있던 것을 4~9개월 동안 받을 수 있도록 30일 이상 연장했다. 실직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의 촉진이라는 두 가지 목표 중 전자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 따라 실업급여 반복수급 경향성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실업급여 도입 첫 10년(1998년~2007년)에는 2회 이상 반복수급을 한 사람의 비율이 13.4%에 그쳤다. 실업급여를 딱 한 번 수급한 사람이 전체의 86.6%로 순기능이 훨씬 더 컸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던 것이 실업급여 제도가 대대적으로 '개선'된 2018년부터는 '5년간 3번 이상' 반복 수급하는 사례가 연 10만 명을 넘겼다. 심지어 동일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과 재취업을 반복하는 사례도 나왔다. 매년 부정수급자는 2만 명 이상 적발되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최저임금보다 높아진 것도 문제가 됐다. 2022년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은 179만9800원인데 최저 월 실업급여는 184만7040원이었다. '노는' 실업급여 수급자가 '일하는'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많이 버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널러진 수급 기준 덕에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빠르게 쪼그라들었음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당시 한국노동연구원은 실업급여 제도 개편에 따라 연간 2조원 이상의 재정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는 제도 개편 전인 2017년 10조 2000억원이었던 적립금이 2022년 마이너스 3조9000억원으로 악화됐다.
국민 인식은?…2021년 국민 절반 "반복수급 시 감액 찬성"
실업급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어떨까. 지난 2021년 조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국민의 절반은 '반복 수급'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21년 3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5년 내 3회 이상 수급할 경우 감액'에 동의한 응답자 비율은 52.8%였다. 반면 '사회적 안전망이 약화될 수 있어 반대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은 26.4%에 그쳤다. 나머지 20.7%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번 당정의 움직임을 두고서도 여론은 분분하다. 실업급여 손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어려운 나라에서 오죽하면 해고할까 생각해봐야 한다", "일하기보다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반대한다, "실업급여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니 손봐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
반면 "폐지보다는 수급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 "그럼 급여 중 세금으로 고용 보험 떼지 마라"는 등의 부정적 의견도 있었다.
한편,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